대기업 D사 40대 A 부장은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의 ‘걸그룹 시험지’ 1번 문항부터 당황해 버렸다. 나름 트렌디하고 패셔너블하다고 자부하며 신입사원의 추앙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소녀시대’ 멤버 9명의 이름을 모르는 건 좀 아니잖아. A 부장은 9명을 다 맞힌다는 일념으로 고요한 사무실에서 답을 써내려 갔다. ‘윤아, 태연…’ 음…, 그리고…. 그는 2명에서 막힌 자신을 개탄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써내려 갔다. ‘윤아, 태연, 티아라.’ 지나친 고민은 경쟁사 걸그룹을 통째로 옮겨오게 했다. ‘윤아, 태연, 티아라, 서현, 순규, 써니.’ 대체 순규는 누구인가. 순규는 써니의 본명 아닌가. 결국 A 부장은 써니를 두 사람으로 만들고 나서야 펜을 꺾었다. “나, 어쩔 수 없는 40대군.”
40대들은 소녀시대 멤버 이름을 맞히려 애썼다. 그러나 왕년에 X세대였다는 압박감은 다양한 오답을 불렀다. ‘수능’에 응시한 SK텔레콤과 대기업 D사 40대 직원 30명은 여러 참상을 보여줬다. 직원 B 씨(41)는 창작을 감행했다. 소녀시대 멤버 이름은 ‘소현’. 소현이 누굴까. 그의 첫사랑인가. 또 다른 40대는 ‘쿨’하게도 ‘소희’라고만 썼다. ‘원더걸스’ 소희가 소녀시대에 입적했나 보다.
40대 중 9명의 이름을 다 적어낸 이는 4명이었다. 시험에 응한 풍문여고와 덕성여고 여학생 30명 중에서는 16명이 멤버 이름을 다 썼다. 나머지 14명 중 6명은 ‘유치해서 일부러 안 쓴다’는 듯 한 명의 이름도 쓰지 않았다. 5일 낮 기말고사를 치르고 ‘멘털 붕괴’ 상태로 학교를 나오는 여고생들에게 ‘샤이니’도 아니고 소녀시대 멤버 이름을 써보라는 질문을 한 기자에 대한 복수였을까. 나머지 8명은 멤버 9명 중 8명을 썼다.
40대 직장인들은 각 그룹 멤버 수를 더하라는 6번과 걸그룹 노래 제목 일부에 괄호를 쳐놓은 10번에서 공황상태에 빠졌다. 6번 정답자는 단
1명. 나머지는 그냥 비워놓거나 찍기 신공을 보였지만 다 틀렸다. 그러나 여고생 정답자도 1명에 불과해 ‘어차피 다 같은 인간’이라는 위안을 줬다. 다만 여고생 대부분은 한두 명 차이로 오답을 냈다. 10번 문제를 맞힌 40대는 2명이었다. 여고생은 28명이 정답을 썼다.
가사를 채워 넣는 8번 문제에서는 40대 4명이 답을 맞히며 선방했다. 숨겨둔 작사 실력을 뽐내는 오답도 많았다. ‘(소원)을 말해봐’를 ‘(네 이름)을 말해봐’로 신선하게 바꾼 답. 그동안 꾹 참아왔던 말, ‘내가 제일 (멋있어)’. 정답은 ‘내가 제일 (잘나가)’였다. 40대들은 O₂가 만든 함정에 속속 걸려들었다. 이효리의 히트곡 ‘텐미닛’을 보기에 넣은 2번 문제에는 10명이 ‘정답’을 외치다 오답에 빠졌다. 섹시한 현아가 있는 걸그룹은 ‘포미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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