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라는 출판계에서 청소년 문학은 사정이 나은 편에 속한다. 학교나 도서관들이 대량 구매를 하고, 자기 책은 안 사도 자식 책은 사주는 게 부모들이다. 이런저런 청소년 대상 책들이 쏟아지는 이유다. 그러나 학원폭력 집단따돌림 등 사회적 이슈에 편승한, 비슷비슷해 보이는 작품도 많다.
‘위저드 베이커리’로 25만 부를 돌파한 구병모는 청소년 문학계에서도 색다른 작가로 평가받는다. ‘위저드…’는 마법사가 소원을 들어주는 빵을 파는 빵집을 중심으로, 판타지와 가정폭력의 이색적인 결합을 시도한 소설. 그가 이번에 펴낸 소설 또한 범상치 않다. 외딴섬에서 세뇌당하며 살아가는 아이들 얘기로, 비현실적 상황에서 현실 속 청소년 문제를 풀어내는 작가의 재주가 잘 살아 있다.
청소년 교양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리랜서 PD ‘마’는 개교 이래 16년 동안 외부에 노출된 적이 없는 낙인도의 로젠탈 스쿨에 촬영을 가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학교가 수상하다. 교장은 촬영 인원을 ‘마’와 촬영감독 ‘곽’ 단 두 명으로 제한했을뿐더러 도착하자마자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인터넷과 유선전화도 지정된 장소에 설치된 것만 사용하게 한다. 촬영 장소에도 제한이 있고, 인터뷰 대상자도 학교가 정해준 학생만 가능하다.
‘마’는 교장과 교사들 눈을 피해 학교가 숨겨둔 비밀을 하나둘씩 캐낸다. 이곳 학생들은 가정폭력과 빈곤 등으로 빚어진 결손 가정의 아이들인데, 그들은 독방을 쓰며 사적인 대화는 금지된다. 특별활동으로 진행하는 직업 체험은 학생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무상교육처럼 보이지만 졸업 후에는 숙식비 등을 갚아야 해 졸업생들은 대개 학교에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학교는 성폭력과 감금, 살인도 일어나는 광기의 학교였다. 소설은 학교의 숨겨진 비밀을 캐려는 ‘마’와 이것을 감추려는 교장과 교사들의 심리전이 팽팽히 펼쳐지는 추리물 형식을 띤다. 정체가 들통 난 학교 측이 ‘마’와 반기를 든 학생들을 잔혹하게 공격하는 후반에는 불안과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진다. 서스펜스가 가미된 한 편의 잘 짜인 잔혹극을 보는 듯하다.
작가의 의도는 로젠탈 스쿨의 교육 방식에 숨어 있다. 학생들을 위한다며 엄격한 규율과 획일적인 교육방식을 고집하는데 이것이 결국 학생들의 자유와 창의력을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모습이 드러난다. 타인의 기대와 관심으로 인해 능률이 오르거나 좋은 결과를 이끄는 ‘피그말리온 효과’(로젠탈 효과)가 변질될 경우 성인의 가치관에 아이를 강압적으로 끼워 맞추려는 ‘교육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경고다.
이 같은 로젠탈 스쿨의 설정은 처음엔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 잔혹한 학교에서 우리 교육 현실의 단면들이 문득 드러난다. 어느 날 불쑥 신문 사회면에 등장할 것처럼, 로젠탈 스쿨은 우리의 교육 현실 속에 잠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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