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내면에 억눌린 다채로운 감정을 풀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제 고집대로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아이, 그런 아이를 다루기가 난감한 부모가 함께 읽어볼 만한 그림책이다. 아이들의 생생한 표정을 포착해낸 그림은 따사로운 색감으로 이야기를 포근하게 품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소년이 하굣길 길모퉁이에서 가면을 주우면서부터.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이 가면은 소년을 어떤 동물로든 변신시켜 준다. 웃기게 생긴 명주원숭이가 되어 여자 아이들을 재밌게 해주고, 재주넘는 곰으로 변신해서는 운동장에서 노는 남자 아이들과 어울린다. 하지만 신이 난 원숭이가 여자 아이들에게 뽀뽀를 하려고 하자, 으쓱해진 곰이 남자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하자 친구들은 “다시는 너랑 안 논다”면서 화를 내고 떠나간다. 소년은 여자 아이들의 치마를 들어 올리고, 다른 소년들의 공을 물어뜯으며 화풀이를 한다. 가면 뒤의 소년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지만 그 끝에는 갈등과 분노, 후회가 남는다.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른 소년은 붉은 눈의 늑대로 변한다. 행인들은 늑대를 보고 도망가고, 엄마 아빠조차 소년을 알아보지 못한다. 가면은 벗겨지지도 않는다. 외롭고 슬퍼 떠돌이 개로 변했지만 누나만은 소년을 알아보고 꼭 안고 노래를 불러준다. 단 한 사람이라도 지친 마음을 도닥여 준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언제든 뒤돌아보면 다정하게 미소 짓는 누군가가 있을 때 아이의 마음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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