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대선의 해… 건국신화 영웅들의 리더십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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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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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리더십을 말하다/고운기 지음/344쪽·1만5000원·현암사

이만익 화가가 그린 ‘주몽’. 타고난 활솜씨와 지혜를 갖춘 주몽은 어린 시절 시련을 겪으면서도 준마를 기르며 힘을 키웠다. 주몽은 지혜와 힘의 균형을 갖춘 ‘물지게 리더십’으로 광야에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빛을 뿜는 고구려의 건국시조 동명성왕이 되었다. 현암사 제공
이만익 화가가 그린 ‘주몽’. 타고난 활솜씨와 지혜를 갖춘 주몽은 어린 시절 시련을 겪으면서도 준마를 기르며 힘을 키웠다. 주몽은 지혜와 힘의 균형을 갖춘 ‘물지게 리더십’으로 광야에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빛을 뿜는 고구려의 건국시조 동명성왕이 되었다. 현암사 제공
올해는 대선의 해. 삼국지 초한지 마키아벨리와 같은 동서양 고전에서 배우는 리더십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외국 고전과 인물뿐일까. 웅녀, 박혁거세, 석탈해, 주몽 같은 우리나라 건국 신화 속 인물들은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을까. “신화란 집단 무의식의 원형”이란 카를 구스타프 융의 말처럼 신화 속 등장인물은 한국적 리더십을 이해하는 데 최고의 텍스트가 될 수 있다.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고운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가 이번엔 우리나라 건국신화에서 열한 명을 불러냈다. 모두들 도탄에 빠진 백성의 삶을 구하고 나라를 세운 영웅들이다. ‘물지게 리더십’ ‘물레방아 리더십’ ‘보따리 리더십’ 등 평범한 일상을 결부시킨 리더십 분석이어서 한층 친근하게 다가온다.

○ 웅녀의 ‘바리데기 리더십’=‘단군신화’에서 이니셔티브를 쥔 쪽은 환웅이 아니라 웅녀라고 저자는 말한다.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와 태백산 신단수 밑에 신시(神市)를 세웠지만 인간의 나라를 위한 청사진은 갖고 있지 않았다. 반면 웅녀에겐 확실한 비전이 있었다. 단지 인간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건국의 주인공인 단군을 낳는 것이었다. 웅녀는 이 같은 계획을 치밀하고 주도면밀하게 수행해 나갔다. 호랑이가 중도에 포기했던 이유는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설화 속 바리데기처럼 웅녀는 자발적이며 희생적인 자세로 ‘미래의 비전’을 치밀하게 엮어 나갔던 지도자였다”고 설명했다.

○ 주몽의 ‘물지게 리더십’=물지게를 효과적으로 지기 위해서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어깨 양쪽에 걸린 물통이 절묘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 물통이 적절한 운동을 하며 어깨 위에서 놀아줄 때, 물지게가 저절로 지게꾼의 발걸음을 떼 놓게 한다. 주몽은 타고난 활솜씨에 피나는 노력, 지혜를 갖춘 사람이었다. 그가 세운 고구려는 지혜와 힘이 조화된 나라였다. 광대한 고구려의 영토는 지혜에 힘이 더해진 완벽한 한판승으로 이뤄낸 것이었다.

○ 박혁거세의 ‘보따리 리더십’=“보따리를 풀어 놓은 곳이 주인집이다”라는 말이 있다. 박혁거세는 백성들이 등에 지고 머리에 인 짐을 어디에 풀 것인가를 아는 사람이었다. 신라의 6개 부족이 우왕좌왕할 때, 박혁거세는 백성들에게 보따리를 풀어 정착할 나라를 세운 지도자였다. 세계적인 기업 삼성도 처음에는 구멍가게에서 시작했듯이, 한반도 통일의 주역이 된 신라도 자그마한 부족국가에서 시작했다.

○ 온조의 ‘집토끼 리더십’=“불황일 때는 집토끼부터 지켜야 한다”는 마케팅의 원칙이 있다. 그렇게 지켜낸 집토끼는 산토끼도 몰고 온다. 온조는 유리, 비류에 이어 주몽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복형인 유리가 왕위를 잇자 온조는 비류와 새로운 나라를 세우러 떠난다. 온조는 위기상황에서 자신의 부하들(집토끼)을 데리고 십제(十濟)를 세워 우선 기반을 다졌다. 결국 미추홀로 떠났던 비류의 부하들(산토끼)도 돌아와 백제(百濟)를 건국했다.

○ 왕건의 ‘물레방아 리더십’=“물레방아를 돌리는 물은 먼저 가자고 다투지 않는다.” 리더십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왕건은 선배 궁예와 견훤을 따랐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두 선배를 무리하게 앞서려 하지 않았다. 그는 궁예를 주군으로 끝까지 모시고자 했으며 라이벌이었던 견훤도 존중하고 예우했다. 그는 자신이 물레방아를 돌리는 물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왕건은 통산 전적에서 견훤과 싸워 3 대 7로 졌다. 그러나 전쟁에선 승률이 중요하지 않다. 아홉 번을 져도 최후의 1승을 얻는 자가 승리하게 된다.

이 밖에도 저자는 신라의 석탈해와 김알지의 ‘모퉁잇돌 리더십’, 가락국 김수로의 ‘눈높이 리더십’을 소개하는 한편 반면교사로 경계해야 할 리더십도 꼽았다. 해부루와 금와는 강대국이었던 부여국의 수도를 변방으로 옮겨 스스로 국력을 약하게 한 ‘헛삽질 리더십’, 후백제의 견훤은 자전거 페달 밟듯 아랫사람을 닦달하고 공적은 자기에게만 돌리는 ‘자전거 리더십’으로 비판했다.

올해 대선에는 청년층의 취업난 해소와 국민의 안정된 살림살이가 최대 이슈다. 그래서 후보마다 자기가 눈높이의 소통능력, 물지게꾼의 전문성, 집토끼와 보따리의 현실감각, 바리데기의 자발적 희생, 모퉁잇돌의 비전을 갖춘 후보라고 목청을 키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누가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자일지, 누가 국민을 자전거 페달처럼 밟아대는 리더일지 가려내는 눈도 필요하다. 신화 속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책의 향기#인문사회#리더쉽#신화 리더십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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