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참전 기념식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고향에 돌아왔을 때 환영받지 못했고 심지어 비방당하기도 했다"며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에 대한 잘못된 시선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베트남전은 미국인들에게는 '잊고 싶은' 전쟁이다.
참전을 둘러싸고 뜨거운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베트남전은 5만 8000여 명의 미군이 희생됐지만 결국 실패한 전쟁으로 귀결됐다.
베트남전은 한국인의 기억 속에도 뚜렷한 잔상이 남긴 전쟁이었다.
한국은 베트남전 참전국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한 국가였다. 태국, 필리핀 등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도 베트남에 군대를 보냈다.
베트남전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참전국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박태균 서울대 교수는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인 붐, 그리고 1969년 이후닉슨 독트린으로 인한 미국의 정책 변화는 동아시아 전체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12-13일 인하대 한국학연구소와 동북아역사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할 연구논문 '베트남 전쟁과 동아시아 체제의 변화'에서 베트남전이 한국 등 동아시아의 주요 참전국에 미친 영향을 고찰했다.
박 교수는 사회, 경제적 측면은 물론 정치적 측면도 다각도로 살펴봤다.
우선 베트남전 참전으로 한국 등 주요 참전국들은 엄청난 경제 호황을 누렸다.
한국의 경우 1965년부터 1972년까지 베트남전을 통해 획득한 외화수입은 공식적으로 10억 3600만 달러에 이른다.
박 교수는 "베트남전쟁 특수는 한국 경제가 1960년대 중반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됐다"면서 군수산업의 발전, 건설업의 해외 진출도 베트남전이 창출한 경제적 기회였다고 지적했다.
미국에 군기지 등을 제공한 일본과 대만 역시 전쟁 특수를 누렸으며, 이러한 경제 성장은 정부에 대한 국민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동아시아 각국 '정권의 힘'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박 교수는 진단했다.
그는 "박정희는 1963년 선거에 비해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해서 1969년에는 삼선 개헌을 통해 집권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아시아 문제는 아시아인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닉슨 독트린'(1969년) 역시 동아시아 각국 정부의 독재와 사회 통제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박 교수는 "1971년 한국 정부가 긴급사태를 선포했을 때 미국이 주한 미국 대사관을 통해 이에 대해 항의의 표시를 했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압력을 가할 수 없었다"면서 "그 연장 선상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유신체제를 선언하면서 종신 대통령직을 만들었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광범위하게 침해당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국가에서도 나타났다. 필리핀의 마르코스는 1969년 대통령에 재선된 다음 1972년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대만의 장징궈는 이른바 '백색테러'를 통해 사회 통제를 강화했다.
박 교수는 "닉슨 독트린의 선언은 이들 독재 정부가 일정 정도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고 이는 태국과 필리핀, 그리고 한국과 대만에서 연쇄적으로 비정상적이며 초헌법적인 독재체제가 탄생하는데 중요한 배경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1972년을 전후한 시기 독재 체제의 성립은 곧 민주화로 이어졌다"고 지적하면서 "비록 1960년대 중반 이후 경제적 붐이 내적으로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것이었지만 이것이 곧 민주주의적 기제를 모두 폐기해도 될 정도로 체제가 강화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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