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대학입학학력고사(수학능력시험을 보던 시대가 아니었다)를 몇 개월 남겨두지 않았을 때다. 기술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말씀하셨다. “너희들 아침에 밥 먹을 시간이 없지? 그렇다고 안 먹을 수는 없잖아. 그럼 간단한 방법을 알려줄게. 밥을 우유에 말아. 그리고 김을 얹어 먹어. 그럼 영양도 만점이고 배도 부르고 아주 좋다.”
으…. 아니 어떻게 우유에 밥을 말아 먹어. 이게 말이 돼? 생각만으로도 속이 니글니글해졌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들어보니 이보다 더하다고 생각되는 느끼함을 즐기는 반 아이들이 있었다. 밥을 마가린에 비벼 먹는다는 것이다. 마가린을 밥 위에 얹고 참기름과 간장을 섞어 비벼주면 고소한 맛이 입 안에 퍼지는 게 아주 좋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식의 비빔밥을 먹어 봤다는 사람을 좀 더 만나게 됐다. 마가린이 아니라 버터를 넣는 게 더 정통 방식이라는 주장도 들었다. 엄마들이 값이 쌌던 마가린을 버터 대용으로 썼다는 그럴듯한 추론을 곁들여서 말이다. 그래서 음식 이름도 버터비빔밥이라고 해야 정확하다는 것이다. 마침 지난해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일본만화 ‘심야식당’(아베 야로 작·미우)에도 ‘버터라이스’라는 제목의 에피소드가 있던 걸 떠올리며 한번 만들어 봤다. 해먹기 어렵지 않다.
재료 밥 1공기, 버터 1조각, 간장
조리법
고슬고슬한 쌀밥을 공기에 소담하게 담는다. 버터 1조각을 따끈한 밥 위에 올려놓고 살살 녹기를 기다린다. 그 위에 간장을 조금씩 뿌려서 함께 비비며 간을 맞춘다. 그리고 맛있게 먹으면 된다. 간장은 보통 양조간장을 써도 되고 장조림 간장을 사용해도 나쁘지 않다. 만약 버터가 잘 녹지 않으면 전자레인지에 20초 정도 돌려주자. 김 가루나 깨소금을 뿌려 먹어도 좋겠다.
버터비빔밥은 홀로 먹는 밥이다. 동아일보 최지연 인턴기자(24)는 2년 전 교환학생으로 가 있던 독일의 소도시 대학 기숙사에서 먹던 버터비빔밥의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타국에서 혼자 밥에 버터와 간장을 넣고 비비다 보면 눈물, 콧물도 좀 들어가지 않았을까. 좀 청승맞게 보이려나. 그래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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