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 현장에 가다]남부럽지 않은 자취 10년 칼솜씨 돼지비계 위서… 쭈욱∼망가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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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주 기자의 돼지 골발 체험

뼈 사이에 칼을 대고 1초 만에 빠르고도 부드럽게 잘라야 한다. 칼 잡는 기술이 없으면 칼날이 미끄러진다. 도드람푸드 돼지고기 가공공장에서 손효주 기자가 돼지의 앞다리 부위를 몸통에서 잘라내고 있다. 안성=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뼈 사이에 칼을 대고 1초 만에 빠르고도 부드럽게 잘라야 한다. 칼 잡는 기술이 없으면 칼날이 미끄러진다. 도드람푸드 돼지고기 가공공장에서 손효주 기자가 돼지의 앞다리 부위를 몸통에서 잘라내고 있다. 안성=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들어가면 추워서 몸이 떨릴 거예요. 돼지고기의 신선도를 유지하느라 작업장 내부 온도를 늘 10도로 맞춰 놓거든요.”

돼지고기 가공공장에서 8년째 일하고 있는 임해관 씨(39)가 작업장으로 들어가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얼마나 춥길래….”

하얀색 위생모자를 두 개나 겹쳐 쓰고, 마스크에 하얀 위생복, 팔 토시까지…. 기자는 ‘닌자’처럼 눈만 내놓고 중무장한 채 작업장 문 앞에 섰다. 11일 오전, 경기 안성시 일죽면에 위치한 돼지고기 가공업체 ‘도드람푸드’ 공장에서였다. 임 씨와 인사를 나눈 후 드디어 문을 지나 작업장 안으로 들어섰다.

임 씨가 체력이 약해 보이는 여기자를 너무 걱정해준 것 같았다. 온도가 바깥보다 15도 이상 낮은 탓에 움찔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괜한 것이었다. 추위 대신 장마철의 후텁지근함을 잊게 하는 저온의 상쾌함이 ‘훅’ 하고 다가왔다. “이 정도면 할 만하겠는데?” 겁 없이 돼지고기 해체용 칼을 들었다.

○ 베테랑의 예술 칼놀림


차가운 공기를 헤치고 작업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대형 냉장고에서 갈고리에 거꾸로 걸린 ‘지육(枝肉)’ 수십 덩이가 줄지어 나오고 있었다. 도축한 뒤 머리와 내장, 털을 없애고 세척, 냉장 과정 등을 거쳐 몸통을 세로 방향으로 반으로 가른 돼지를 지육이라 한다.

장정 한 사람이 지육 가운데 하나를 잡더니 4번과 5번 늑골 사이에 칼을 집어넣었다. 목살, 갈비, 항정살, 앞다리살 등이 포함된 상체는 베테랑 작업자의 칼을 만나자마자 잘 드는 가위에 닿은 종이처럼 부드럽게 잘렸다. 분리된 상체는 첫 번째 컨베이어벨트 앞에 쌓인 뒤 벨트를 타고 골발(骨拔·뼈를 떼어내는 일) 작업자에게로 간다. 골발 작업자는 상체에서 뼈를 분리해 목살 갈비 등으로 크게 분할한다. 이 작업물들은 다시 정형 작업자에게로 옮겨져 세부 부위로 분리되고 부위별로 깔끔하게 다듬어진다.

두 번째 컨베이어벨트에서는 몸통(5번 늑골부터 꼬리뼈까지) 부위가, 세 번째 벨트에서는 뒷다리 부위가 분리돼 각각 작업대에 오른다. 지육을 3등분하는 작업을 작업장 ‘프로’들은 ‘각을 친다’고 표현했다.

“자취생활 10년에 칼질 좀 해봤거든요.” 하지만 작업자들의 부드러운 칼놀림을 본 기자는 칼을 잡자마자 자신감을 잃었다. 늑골 사이 살이 있는 지점을 찾아 칼을 대야 하지만 지육이 너무 신선해서일까. 온통 새빨간 살 때문에 뼈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아 어디가 뼈이고 살인지를 구분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게다가 칼 손잡이 윗부분을 덮는 식으로 칼을 잡아야 힘이 실리는데 ‘생초보’는 반대로 칼 손잡이 아랫부분을 감싸듯 잡고 칼질을 해대는 바람에 지육이 잘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칼은 지육의 지방과 껍질 위에서 계속 미끄러지기만 했다. 보다 못한 임 씨가 지육을 조금 잘라 칼이 나갈 길을 만들어주자 그제야 칼이 조금씩 말을 듣기 시작했다.

○ 하루 1000마리 해체·골발·정형

뒷다리 부위 작업대인 세 번째 컨베이어벨트로 자리를 옮겼다. 뒷다리 부위는 지방이 거의 없고 식감이 퍽퍽해 구이용보다는 소시지나 햄 원료로 많이 사용한다. 가공용이다 보니 원형 그대로 쓰일 일이 거의 없어 그나마 칼질 실수가 용납되는 부위다.

자신감을 회복하고 뒷다리살에 남은 지방과 질긴 막을 떼어 내는 작업이 한창인 정형 작업대 앞에 섰다. 그러나 정형 작업 30년 경력의 김연심 씨(60·여)의 칼에 ‘놀아나듯’ 휙휙 떨어져 나가던 얇은 지방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칼은 고깃덩어리 위에서 계속 미끄러졌다. “이 칼이 왜 저한테만 오면 안 들죠?”

“근육 결에 상관없이 마구 칼을 들이대는 건 머리카락을 아래에서 위로 빗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근육 형태, 특성, 결에 대해 다 배우고 난 뒤 작업을 해야 해요.” 돼지고기 정형작업을 하려면 칼질의 리듬과 손목 힘 조절법은 물론이고 근육 특성 등 돼지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고수의 가르침이었다. (실제로 ‘장자’에 ‘소 몸뚱이 속의 본래 이치를 따라 칼을 놀린다’는 대목이 나온다.) 김 씨가 칼을 들더니 기자가 결 반대 방향으로 마구 칼을 들이대 지저분해진 뒷다리살의 얇은 지방을 빠른 손놀림으로 10초 만에 말끔히 벗겨냈다. 장인의 칼질을 거친 뒷다리살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예쁜’ 살코기로 변신했다.

돼지고기에 칼을 한 번이라도 넣어보겠다는 굳은 의지는 돼지고기 정형에도 과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안 뒤 사라지고 말았다. 게다가 컨베이어벨트 작업 특성상 생초보가 끼어들었다가는 1시간에 100마리, 하루 870∼1100마리분의 지육을 삼등분하고 골발·정형작업을 해야 하는 긴박한 공장에 민폐만 끼치게 될 상황이었다. 90여 명의 직원은 하루 10시간 가까이 지육을 삼겹살 목심 등 인기 부위는 물론이고 항정살 등심덧살(가브리살) 등 특수 부위로 세분화해 작업을 하느라 생초보의 ‘칼쇼’를 봐줄 틈이 없었다. 결국 기자는 공장 이곳저곳을 돌며 직원들의 현란한 칼놀림을 보며 감탄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감탄을 거듭 하던 중 직원들이 돼지 하체에서 꼬리를 떼어내는 작업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직원들은 꼬리를 ‘딴다’라고 했다. 꼬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살점이 함께 붙은 두툼한 꼬리 수백 개가 커다란 소쿠리에 가득 쌓여 있었다.

임 씨는 “꼬리는 애주가들 사이에서 소문난 안주”라고 했다. 꼬리에는 피부에 좋은 콜라겐이 풍부하고 식감이 쫄깃쫄깃해 닭발처럼 양념한 뒤 잘게 썰어 먹으면 무척 맛있다고 한다. 임 씨는 “아직은 ‘마니아층’에게만 알려져 있을 정도로 대부분 꼬리 맛을 몰라 아쉽다”고 말했다.

○ “돼지야, 여름에도 쑥쑥 커라”

방금 ‘딴’ 꼬리가 소쿠리에 수북이 쌓일 때쯤 2시간 꼬박 이어진 치열한 작업 후의 휴식을 알리는 음악소리가 작업장을 채웠다. 작업장 온도를 10도에 맞추느라 80dB의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냉풍기 소리와 반가운 휴식시간을 알리는 음악소리가 뒤섞였다. 직원들은 서로 대화하기도 어려운 작업장에서 2시간 만에 나와 바깥 공기를 마시며 밀린 대화를 나눴다.

작업장을 나선 임 씨는 “하루 종일 골발작업을 해 피곤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여름은 행복한 계절”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잔뜩 사서 휴가를 가는 7, 8월 휴가철이 낀 때문이다. 여름에는 대형마트 백화점 등 거래처에서 들어오는 주문량이 평월 대비 20% 이상 늘어난다. 그동안 작업해 물류창고에 넣어둔 냉동 돼지고기는 물론이고 그날그날 생산한 냉장육까지 팔 수 있는 절호의 시기다. 이날 작업장 옆에 있는 대형 물류창고에는 대형 트럭 수십 대가 줄지어 드나들며 포장을 마친 돼지고기를 차 한가득 실어나르고 있었다.

그러나 여름철에는 늘어나는 소비량과는 반대로 정작 출하가 가능한 돼지가 부족해 가공업체들에 아쉬움을 남긴다. 보통 180일 된 체중 115kg가량의 돼지가 출하 기준이지만 여름철에는 날씨가 더운 탓에 돼지가 제대로 크지 못해 출하 기준에 맞는 돼지가 많지 않다. 주문량이 큰 폭으로 늘어도 주문을 충족시킬 만한 돼지가 모자라 늘 아쉽다.

임 씨가 공장을 들고 나는 트럭들을 보며 말했다. “돼지가 여름에도 쑥쑥 자랐으면 좋겠어요. 지육이 많이 들어와서 ‘예쁘게’ 더 많이 가공해 납품을 많이 하면 직원들도 금방 부자가 되지 않겠어요?”

안성=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돼지 골발#지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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