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김순덕] 김재철 “노조 두려워하는 勞營방송 관행 끊어야 MBC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9일 18시 15분


“법인카드로 마사지 받은 적 없어…안철수 SBS ‘힐링캠프’에 놓쳐 분하다”

김재철 MBC사장
김재철 MBC사장
MBC 주말드라마 '무신(武神)'에는 평생 무신(武臣)정권의 눈치를 보며 목숨을 부지하는 고려 23대 왕 고종이 등장한다. 역대 왕들이 무신들에게 맞서다 줄줄이 쫓겨난 것을 잘 알기에 "궁 안에만 박혀 사는 내가 뭘 알겠습니까. 정치는 다 도방에서 하는 것 아닙니까"하는 구차한 왕이다. MBC 김재철 사장(60)은 노조 파업이 한창이던 4·11 선거방송 직전, 보도국장 시사제작국장 등 주요국장의 2배수 추천제를 받으라는 노조 측 요구에 "나더러 고종을 하라는 거냐. 노조가 또 도방을 차리겠다는 거냐"며 거부했다.

노조는 '공정방송 실현,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170일간 파업을 벌이다 18일 제작에 복귀했다. 사측이 발간하는 MBC 특보는 평일 10%대의 '뉴스데스크' 시청률이 5.5%로, 주말은 2.6%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노조는 지난 주말 김재우 이사장 등 현 이사 3명의 연임이 발표되자 "김 이사장은 MBC 파업사태를 책임져야 할 사람"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오랜 파업으로 올림픽 방송 차질은 없을까. 채널 이미지도 많이 흔들렸는데….

"올림픽 방송도, '무한도전'도, 정상적으로 제작 운영되고 있다. 보직간부들이 '잘못하면 MBC가 침몰할 수도 있다'는 각오여서 이번에 아주 단단해졌다."

-단단해졌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MBC는 노영(勞營)방송의 성격이어서 보직간부들이 노조를 두려워했다. 나도 보도제작국장을 했지만 부장 국장이 PD나 기자를 꾸짖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기자의 취재기사를 부장이 '데스킹'하거나 게이트키핑하는 기능이 없다. 기자나 PD 주축이 현장을 뛰는 젊은 세대니까 아무래도 진보적인 생각을 갖는다. 자기들이 맞다고 PD가 계속 주장하고 기자가 대들면 노조에서 '다 맞다는 데 왜 부장만 딴소리 하느냐'고 끼어든다. 그러다 쫓겨난 부장 국장도 적지 않다. 나는 반드시 노영방송의 관행을 끊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번 파업에서도 다들 사장이 굴복할 줄 알았을 거다. 내가 일관되게 원칙대로 대응하니 간부들이 따라왔다."

-왜 노영방송이 됐을까.

"민주화운동으로 1987년 노조가 생겼다. 그때만 해도 노조가 분명했다. 공정방송 주장했다. 노조는 계속 강해지고 회사는 계속 양보하면서 노조가 실질적으로 회사를 지배하게 된 거다. 경영진이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니 MBC 처우가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점차 정치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 노조위원장 출신 최문순 사장처럼 노조활동을 해서 간부 되고 잘되는 사람이 많았다. 노조가 옳다고 하면 사장도 '노(No)'를 못했다. 나도 한때 노조위원장 할까 했다가 정치부에 있어서 접은 적도 있다."

-노조의 정치성이 프로그램에서 편향성으로 나타나서 문제 아닌가.

"그런 점이 있다. 나는 정치부에서 여당과 야당을 다 출입한 흔치 않은 기자다. 나는 선배한테 꾸지람도 들었다. 이거면 이거지 왜 중도냐고. 방송에서 정치색을 빼야 한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정치세력은 항상 MBC를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했다. 나는 야당 편 들 것도 없고, 여당 편을 들어본들 MBC에 득이 되는 것도 없다고 본다. MBC는 국민의 편에서 비판할 게 있으면 비판하고 잘한 게 있으면 잘했다고 하는 게 회사에 도움이 되는 거다."

-노조가 올해 파업하면서 '공정방송'을 내걸었고 그걸 위해서 사장이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2010년 방문진 이사진이 나를 사장으로 선임하자마자 노조가 파업을 시작했다. 낙하산 인사이고 무능하다는 거다. 그때 열명 중 아홉은 노조가 사장을 몰아낼 줄 알았다. 왜냐면 한번도 노조를 이긴 사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칙대로 대응해서 39일 만에 들어왔다. 들어오면서 분명히 이 같은 일이 한번은 더 있을 것이고, 이건 MBC가 노영방송에서 국민의 방송으로 가는 과정이므로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각오하고 있었다."

-MB와 가까운 건 사실 아닌가. 친분이 없었으면 사장이 됐을까.

"일정부분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사장 선임은 방문진 이사 9명이 투표로 결정한다. 대주주가 뽑은 사장을 처음부터 낙하산이다, 무능하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청주MBC와 울산MBC 사장을 해서 마당발이다. 서울문화재단 이사를 하면서 MB와 가까워졌고 정치부 기자하면서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과도 가까웠다. 나는 사람을 한번 사귀면 오래 간다."

-MBC 사장은 늘 정부와 가까운 사람이 왔다. 왜 이번만 노조가 그렇게 요란했을까.

"2004년 노조위원장 출신 최문순 사장이 나오면서 노조간부들이 더 강하게 가야겠다, 우리가 가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 것 같다. 2008년 취임한 엄기영 사장도 좀 부드러운 분이다. 후배들 얘기 많이 들어줬다. 그러다가 내가 와서 원칙대로 하자 반발이 커졌다,"

-지금도 2008년 'PD수첩-광우병'이 옳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대법원은 2011년 9월 MBC 제작진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보도의 주요 내용은 허위라고 판결했는데….

"'PD수첩-광우병' 여파로 MBC의 채널 경쟁력은 공중파 3사 4개 채널 중 2008년 꼴등이었다. 2009년 3등에서 내가 사장이 된 2010년 2등 했다. 작년 시청률은 1등이다. 올해는 보도에서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보도국에 기존 예산+30억원을 지원할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1월 초 기자총회를 열더니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불신임에 이어 곧바로 파업에 들어갔다. 이건 기획파업이다. 본사 노조간부가 16명인데 그걸 거친 원로간부들이 많고, 언론노조와 민주노총 소속이고, 야당 쪽이다."

-올해가 선거의 해여서 사장을 굴복시키려고 한 것일까. 이 정부에서 일어난 5차례 파업 중 이번까지 4차례가 총선 지방선거 재보궐 선거 전에 일어났다.

"그렇다. 크게 보면 그 말이 맞다. 나는 MBC가 공정방송 공정보도를 하려면 여든 야든 중간에 서면 된다고 강조했다. 정말 두려워할 것은 시청자와 국민뿐이고, 그게 공영방송이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노조에 민주노총 탈퇴하라고 했다."

-노조는 사장이 무용가 J씨에게 막대한 지원을 했다고 주장한다.

"회사의 문화사업 파트너일 뿐이다. J씨는 동경서 유명한 전통 무용가여서 동경 특파원 시절 알게 됐다. J씨 남편이 기러기남편인데 노조가 찾아가서 자꾸 뭐라고 하니 의처증 비슷한 게 생긴 것 같다. 나도 안타깝다. J씨가 기자회견 하겠다고 했을 정도다. 우리 집사람도 J씨를 안다."

-노조는 "김 사장이 업무와 관계없는 일에 2년 간 법인카드로 6억9000만원을 사용했다"며 3월초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 남부지검에 고발했다. 사장이 2년간 법인카드로 7억원이나 썼다면 지나친 것 아닌가.

"내가 혹독하게 검증을 당했다. 내가 쓴 건 2억2000만원이고 나머지는 회사 공용카드 사용으로 봐야 한다. 일본에서 피부 마사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은 탤런트와 스태프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화장품을 산 것이다. 회사 활동을 위해 경비를 쓴 것이다. 노조는 한번 네이밍을 하면 거기 맞춰 끝까지 공격을 한다. 사실이 아닌데 질 수가 없었다. 어제 MBC 감사국에서 감사결과 문제없다고 밝혔고 방문진에서도 인정했다."

-방문진이 새로 구성되면 사장의 거취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순리와 상식 경영성과대로라면 자신 있다. 사내에서 나를 평가하는 분들도 많다. 그래서 이렇게 버틸 수 있었다. 며칠 전에도 노조가 몇 가지 요구했지만 나는 하루를 해도 사장답게 하겠다고 했다. MBC 새 역사를 쓰는데 내가 초석이 되고 싶다."

-노조는 "방송사상 최장기 파업을 풀고 업무에 복귀한 조합원들을 상대로 악랄한 보복인사를 가했다"고 주장했는데….

"간섭한다고 할까봐 보도국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혼란스럽고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있다. 노조는 제작에 열중한 직원들을 '부역자'라며 편 가르기를 한다. 불법파업에 참여한 직원 일부에 대기발령을 냈고 보직 변경을 했다. PD수첩 팀의 경우 계속 거기만 있어서 다른 세상을 모른다. 우물 속에만 있지 말고 넓은 세상을 보라고 했다."

-만일 또 파업하는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통이 너무 심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힘들 것이다. MBC에서 예능파트와 PD가 센 것이 사실이지만 파업을 통해 보도기능이 멈추면 세가 꺾인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을 것이다. 보도에서 신뢰를 잃으면 채널 신뢰도까지 떨어진다. 불법파업은 용납할 수 없고, 무노동 무임금은 엄격히 지켜진다는 원칙을 따라야 회사도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면 벌써 무너졌다. 작년 본사매출이 전년 대비 20% 증가한 8922억원이다. 시청률도 2010년 3위에서 작년엔 1위를 했다."

-시청률에 신경 쓰는 것 같다. MBC는 공영방송인가.

"현재는 공영방송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지금 바로잡는 것이다. 12월 19일까지 보면 안다. 불편부당하게, 공정하게 대선방송까지 하고 나면 MBC는 정상화 된다. MBC 경쟁력은 빠르게 회복될 것이다. 그만큼 저력 있는 회사가 MBC다."
노조는 "4월 총선 당시 편파방송의 극치를 보여준 황헌 보도국장을 대선 방송을 총괄하는 선거방송기획단장에 임명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정방송에 대한 MBC의 정의는 뭔가.

"5000만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영방송이다. 제일 중요한 것이 팩트(사실)다. 팩트를 기본으로 해서, 국민의 여러 가지 의견을 듣고, 시시비비를 구하고, 양쪽 의견의 균형을 갖춰 국민들이 보고 판단하게끔 해야 한다. 내가 노조에 공격당해서 그렇지 사실은 진보적인 사람이다. 약자를 위한 방송이 공영방송이다."

-MBC 지분 30%를 갖고 있는 정수장학회 처리에 대해 논란이 있다. MBC는 어떤 지배구조로 가는 것이 맞을까.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개인적 의견을 듣고 싶다.

"민영화도 검토 대상이다. 왜냐면 지금은 기형적 구조이지 않나. 1987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생겨난 독특한 회사다. 사원들 생각과 방문진의 의견, 국민적 합의를 통해 선택을 해야 한다. 사실 KBS가 부러운 것도 있고, SBS가 부러운 것도 있다."
"양쪽의 좋은 점만 누려온 것 같다. KBS처럼 감사원 감사를 받지 않아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고, SBS처럼 시청률 경쟁해서 돈 많이 벌고…"라는 추궁에 그는 "하하 그런 점도 있다"며 웃어넘겼다.

-안철수 원장이 MBC '무릎팍 도사'로 처음 떴는데 최근 SBS '힐링캠프'에 놓쳤다. 분하지 않나.

"분하다. 파업만 아니면 우리가 더 좋은 아이템을 할 수 있었는데."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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