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은교’의 주인공 이적요 시인이 공대 출신의 제자 서지우를 두고 한 말이다. 시인과 제자가 경쟁적으로 좋아하는 여고생 은교. 세 사람은 어느 날 산행을 하고, 은교는 절벽 아래로 손거울을 떨어뜨린다. 시인은 목숨을 걸고 손거울을 찾아내 은교 손에 쥐여 주지만, 서지우에게 그 손거울은 다시 또 사면 그만인 ‘one of them’일 뿐이다. 그렇게 작품 속 ‘공대생’은 ‘태생적으로 낭만이 결핍된 인간’으로 그려진다. 합리적 이성의 최전선에 과학이 있다면 문학적 감성의 으뜸은 시일 터다. 정녕 과학과 시는 한데 어우러질 수 없는 것일까.
‘진정일 교수, 詩에게 과학을 묻다’의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대답한다. “‘시’와 ‘과학’은 창조로 통한다”고.
책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을 함축된 언어로 표현한 문학작품이 ‘시’라면, 자연의 법칙을 간결하게 설명하는 단어들이 곧 ‘과학’이므로 둘은 깊은 대화가 가능하다. 저자는 한국시에 자주 등장하는 불 물 바람 꽃 나무같이 형상화된 자연에서부터 사랑 고통 등과 같은 추상적인 시어들을 과학을 이용해 설명한다. 시인 김소월의 ‘초혼’과 박인환의 ‘이국항구’에 쓰인 ‘사랑’의 의미를 비교하고, 호르몬 분비로 보는 생물학적인 ‘사랑’을 분석하는 한편,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겨나기까지 겪게 되는 특징들을 ‘본능적 욕구, 이끌림, 집착’이라는 3단계로 구분한 심리학 연구를 소개한다. 김동환의 ‘국경의 밤’에 등장하는 ‘바람 소리’와 ‘고기잡이 얼음장 끄는 소리’에서 소리 전달속도와 소리파의 사인곡선, 주파수로 옮겨가며 시와 과학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한다.
‘별빛부터 이슬까지’는 시적인 상상력과 감수성이 충만한 관찰, 간단한 실험을 통해 독자들을 자연과학의 세계로 초대하는 책이다. 망망대해를 거쳐 외딴 섬에 도착한 도마뱀 한 쌍이 후손을 낳고 점차 번성해 새로운 도마뱀 왕국의 기초를 세운다. 이들의 후손 중 시적 재능을 가진 도마뱀이 어느 날 두 마리의 선조 개척자를 회고하며 영웅 서사시를 쓴다면 모험과 기적을 다룬 세계 문학계의 위대한 신화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우리가 다큐멘터리에서 만나는 도마뱀 한 마리는 어쩌면 ‘로빈슨 크루소’와 ‘오디세우스’의 후예일지도 모른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의 과학·철학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시종일관 유머와 재치 넘치는 표현으로 자연을 묘사한다. 부제는 ‘망원경을 버리고 시인의 눈으로 재구성한 자연관찰기’. 눈의 생성원리를 설명하는 대신 탄산수 제조기와 투명한 호스로 비와 눈을 직접 만들고, CD를 통해 햇빛과 인공 빛을 분광시키는 법을 소개한다. 형광등이 자외선 빛을 방사하는 원리와 빛이 합쳐져 흰색이 되는 원리가 아이팟에서 추출한 음악의 이동과 보관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데이터양을 줄이는 원리와 비슷하다는 설명도 인상 깊다. 책 속에 실린 일러스트레이션은 설명을 한층 돋보이게 해줄 뿐 아니라 아기자기한 유럽 동화책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휴가철을 맞아 산과 바다로 떠나는 이들에게 당장 자연은 풍경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돌이켜봤을 때 그곳에서 만진 조약돌, 푸른 숲 내음, 짭짤한 바닷물 등 자연 전체를 두루 경험한 여행이었음을, 나아가 자연과학은 결코 엄숙하고 차갑기만 한 것이 아님을 곧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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