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후반 메이지유신 이후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지향해온 일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까지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일본문화의 이중성은 늘 흥미로운 분석 대상이었다. 이 책은 일본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본 비판론적 일본론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고베여학원 문학부 명예교수인 저자는 중심부에 반대되는 ‘변경(邊境)성’을 일본 문화의 핵심적 특성으로 꼽는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까지 올랐는데도 여전히 ‘비주체적 열등의식’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변경인’인 일본인은 여기가 아닌 저 바깥 어딘가에 세계의 중심인 ‘절대적 가치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화적인 열등감에 싸여 끊임없이 힐끔거리며 중심부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것을 따라잡으려고 버둥거린다는 설명이다.
일본은 타국과 비교하지 않으면 자국이 지향하는 국가상을 그릴 수도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는 “일본인은 후발주자의 입장에서 선행의 성공사례를 효율적으로 모방할 때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선발주자의 입장에서 타국을 이끌어갈 처지가 되면 사고가 정지해버린다”고 비판한다.
세계의 중심 국가 중 하나인 일본이 왜 ‘변경’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는 수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이 책은 일본에서 35만 부 이상 팔렸고 2010년 ‘일본 신서대상’을 수상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일본인 못지않은 한국인의 ‘변경성’을 지적하는 것 같아 뜨끔한 느낌도 든다.
“세계 표준에 맞춰 행동할 수는 있지만 세계 표준을 새롭게 설정하지는 못한다, 이것이 변경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대다수 지식인은 ‘일본의 험담’밖에 하지 않게 되지요. (중략) 그러니까 ‘세계 표준을 따라잡자’는 익숙한 결론에 귀착합니다. 핀란드의 교육제도가 훌륭하니까 핀란드를 모방하자, 프랑스의 출산정책이 성공했다고 하니까 프랑스를 본받자, 브라질 축구는 세계 최강이니까 브라질을 닮아보자, 북한이 핵미사일을 준비한다고 하니 우리도 북한을 따라하자, 이런 식으로 늘어놓자면 밤을 새워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변경성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변경인에게는 외래의 제도와 문물은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개방적 태도가 필수다. 변경성 덕분에 일본은 아시아에서 번역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가 됐다. ‘Philosophy’를 철학으로, 주관 객관 개념 관념 명제 긍정 부정 이성 같은 서양의 용어를 한자로 번역한 것도 일본인이었다. 반면 중국인은 중국어에 없었던 개념어를 새롭게 추가한다는 것은 그들의 중화 문화가 지닌 불완전성이나 지방성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보고 번역어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어떻게 21세기에도 변경인으로 잘 살아갈 것인가에 주목한다. 그는 “현대 일본의 국민적 위기는 배우는 힘의 상실, 즉 변경의 전통을 상실한 데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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