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벽 무늬까지 백범 생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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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8일 03시 00분


■ 김구 선생 서거한 서울 ‘경교장’ 복원현장 첫 공개

1945년 11월 23일 오후 4시. 중국 상하이(上海) 공항에서 이륙한 미군 C-47 수송기가 3시간 만에 김포 비행장에 내렸다. 백범 김구 선생(사진)은 땅바닥의 흙 한 줌을 움켜쥐고 흙냄새를 맡았다. 극비리에 귀국했기에 환영인파는 없었다. 백범은 미군이 준비한 승용차를 타고 숙소인 서울 종로구 평동 경교장(京橋莊)에 도착했다. 백범을 수행했던 선우진 선생은 회고록에서 “11월이었지만 눈이 꽤 많이 왔다. 경교장은 우리를 맞을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경교장은 백범을 비롯한 임시정부 각료들의 숙소이자 집무실이었다. 같은 해 12월 3일 첫 국무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1949년 6월 26일 백범이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쓰러진 곳도 2층 집무실이었다.

○ 타일 한 장까지 신중히 복원

7일 병원 본관으로 쓰였던 귀빈응접실에서 막바지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7일 병원 본관으로 쓰였던 귀빈응접실에서 막바지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010년까지 강북삼성병원 본관이었던 경교장(사적 465호)이 임시정부 환국일인 11월 23일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1938년에 건축된 경교장은 근대 건축양식의 지상 2층, 지하 1층짜리 건물로 백범 서거 이후 미군특수부대 주둔지, 대만대사관저, 베트남대사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1967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이 매입해 병원 건물로 사용해 왔다. 이 과정에서 내외부가 크게 변형돼 복원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2005년 2층 집무실 내부를 복원했지만 나머지 공간은 모두 병원 건물로 사용해 왔다. 서울시는 소유주인 삼성생명, 강북삼성병원과 협의해 2009년 4월 경교장 전체를 복원하는 데 합의했다. 2010년 6월 강북삼성병원이 병원 시설과 환자를 옮기고 경교장 건물을 서울시에 기증하면서 지난해 3월 복원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7일 찾은 경교장 복원 현장은 가림막으로 가려진 채 외벽 타일공사 등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복원공사를 맡은 삼부토건 홍성일 이사는 “당시 일본에서 수입한 자재를 사용해 국내에선 이런 색상의 타일을 구할 수 없다”며 “일본에서 타일을 수입해 붙이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오른쪽 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자 식당으로 쓰였던 공간이 나왔다. 바닥은 나무를 섬세하게 잘라 모양을 냈고 회칠이 된 벽과 천장의 이음새에도 나뭇잎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병원일 당시 약국으로 쓰였던 방은 바닥 대리석을 들어낸 뒤 마루를 새로 짜 넣었다.

○ 사진·설계도 덕분에 원형 살려

백범 김구 선생이 집무실과 숙소로 썼던 경교장의 외관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위). 1930년대 경교장 1층의 귀빈응접실. 고풍스러운 소파와 샹들리에를 갖췄다. 동아일보DB
백범 김구 선생이 집무실과 숙소로 썼던 경교장의 외관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위). 1930년대 경교장 1층의 귀빈응접실. 고풍스러운 소파와 샹들리에를 갖췄다. 동아일보DB
원형 그대로 복원할 수 있었던 데엔 당시 설계도와 사진의 도움이 컸다. 서울시 문화재과 김수정 팀장은 “경교장이 처음 지어질 당시 월간지 ‘조선과 건축’에 설계도와 내부 사진이 상세하게 소개됐고 임시정부 수반이 사용한 이후에도 외신 등에서 찍어놨던 사진이 많다”고 설명했다. 2010년까지 병원으로 쓰이며 내부 벽체는 본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돼 있었지만 천장은 별다른 개조 없이 석고보드를 덧대 사용했던 덕분에 천장 모양을 근거로 설계도와 대조해 홀과 집무실, 서재 등을 복원했다.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대리석 ‘로사베로나’를 사용해 장식한 계단 벽면은 원형을 남겨두고 빈 공간만 새 대리석으로 붙였다. 김 팀장은 “오래돼 색이 바랬지만 원형을 최대한 남겨둬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떼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부 곳곳의 타일과 벽돌도 남아 있던 원형을 바탕으로 새로 만들어 붙였다. 백범의 숙소와 집무실로 쓰였던 2층은 구조변경이 심해 새로 짓다시피 했다. 하지만 다행히 서재는 병원 물품창고로 쓰였던 덕분에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경교장 내에서 가장 본래의 모습에 가까운 공간이다.

복원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병원으로 쓰였던 탓에 복원 과정에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지금도 정문 왼쪽 벽면과 건물 뒤쪽 벽면은 각각 병원의 본관 입구(1층)·산부인과(2층), 신관의 응급실(1층)·수술실(2층)과 맞닿아 있다. 먼지나 소음 때문에 철거작업은 주말에만 할 수 있었다. 홍 이사는 “폐기물은 자정부터 오전 5시 전에만 버릴 수 있었고, 대형 트럭도 부를 수 없어 500t이나 되는 폐기물을 소형 트럭으로 치우느라 애먹었다”고 말했다.

시는 정식 개관에 앞서 8월 15일 경교장을 비롯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저인 이화장(梨花莊),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대통령 가옥 등 6곳의 정부수반유적을 시민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김구#경교장#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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