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조에 설화와 함께 전하는 동요다. 두 나라를 차고 기우는 달에 비유해 백제는 곧 쇠퇴하고 신라는 일어날 것임을 대비했다. 하지만 의자왕은 나라의 멸망을 예언한 이 동요의 뜻을 새겨듣지 않았고,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처럼 옛 민중이 간결한 음악적 언어로 현실에 대한 우려나 정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을 ‘요(謠)’라고 한다. 앞날의 길흉을 예언하는 도참사상이나 참언(讖言)을 토대로 만들어진 요가 ‘참요(讖謠)’다.
왕조의 교체기나 전쟁 등 역사의 격변기에는 어김없이 참요가 유행했다.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동사강목 등 고전 문헌에 등장하는 참요 127편을 찾아 원문을 싣고 해설과 역사적 배경 설명을 곁들였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녹두 남개 안지 마라/녹두꽃치 떨어지면/청포장사 눈물낸다.” 격변의 시기였던 동학농민운동 당시에는 이 노래 ‘청포장사요’가 구전됐다. 여기서 파랑새는 백성을, 녹두는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인 ‘녹두장군’ 전봉준으로 볼 수 있다. 동학군을 비적으로 간주해 동학군에 가담하는 것을 말린 것이다. 동학전쟁이 일어난 지역의 주민들조차 동학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하진 않았음을 알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참요는 대항언론의 성격을 지니며 현실 비판의 기능을 했다. 옛날 위정자들은 민중의 소리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여겨 거리에서 불리는 동요나 민간에 떠도는 참요에 귀를 기울였다. 간결한 노랫말의 특성상 전파가 빨라 오늘날의 트위터와 닮았다는 저자의 해석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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