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A 씨가 달걀 3개를 들고 “얼마예요?”라고 묻자 “100만 원”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A 씨는 종이 가방 안에 가득 담긴 수많은 1만 원짜리 지폐 중 한 움큼을 꺼내 건넨다. 그러나 상인은 돈을 다시 A 씨에게 돌려준다. “어차피 위조방지장치를 써 봐도 이 돈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 그 종이 가방과 달걀 3개를 바꿉시다.” A 씨는 가방에 들어있던 돈을 바닥에 쏟아붓더니 종이 가방을 주고 달걀 세 개를 챙긴다. 남은 돈은 그냥 버려 둔 채다.
30분 뒤 달걀 가게 앞에는 ‘달걀 3개 200만 원’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었다. 한국은행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모로모로공화국이 2년째 대량으로 초정밀 원화 위조지폐를 쏟아부으며 대한민국에 경제 테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율은 100%를 넘어 1000%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게 다 위조지폐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이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엇비슷한 수준까지는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 역사에서도 전쟁 상대국의 지폐를 대량으로 위조해 경제 근간을 흔드는 ‘경제 테러’가 비일비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나치 독일친위대는 인쇄와 위폐 제조 전문가 등 유대인 100여 명을 작센하우젠 수용소에 가둬 놓고 영국 파운드화를 완벽하게 위조하라고 명한다(이른바 베른하르트 작전). 2년여가 지난 1942년 이들은 완벽한 수준의 초정밀 위폐를 만들어 독일군 활동비 및 전쟁 물자 구입비로 썼다. 일부는 파운드화가 통용되는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독일이 만든 돈은 1억3000만 파운드로 당시 영국 국고의 4배에 이르렀다.
세계로 퍼져 나간 위조 파운드화가 영국으로 밀려들어 오고 대량으로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영국 내 인플레이션율은 50%에 달했다. 영국 국민은 아무리 진폐라고 해도 위폐로 의심하며 화폐를 신뢰하지 않게 됐다. 영국 경제가 파탄지경까지 내몰리자 1944년 9월 초 영국은행은 “5파운드 이상의 지폐는 발행을 중단하거나 신권으로 교체할 것”이라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영국은 1980년대까지 베른하르트 작전이 남긴 혼란을 수습해야 했다.
1973년 일본 사회당은 미국이 베트남전쟁 당시 경제를 교란하기 위해 20억 달러 상당의 각종 위조지폐 1500만 장을 하노이에 공중 살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쟁 중 경제 교란을 노린 위폐 및 미발행권 살포는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은 한국은행 본점을 점령해 금고에 있던 지폐를 마구 살포했다. 이 때문에 제1차 긴급통화조치가 발동됐다.
일본도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중국 경제를 교란할 목적으로 40억 위안의 위조지폐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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