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미래에 대한 불안들이 조금씩 현실로 드러나는 듯하다. 나라의 살림살이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데, 나의 삶은 윤택함을 잃어간다. 부모들은 노후 준비를 미루고 아이들에게 투자하지만, 아이들은 점점 치열해져 가는 경쟁 속에서 방황하기 일쑤다. 사회 밑바닥 깊이 드리운 불안과 공포, 강박…. 이 작가는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을 통해 다시금 우리를 찾아온 세기말적 징후를 짚어낸다.
표제작 ‘하루’는 너울처럼 울렁이며 차오르는 사회 불안의 한 점을 핀셋으로 딱 집어낸다. 절망 속에서 분별력을 잃고 스스로 파멸해가는 인간들을 현미경의 재물대에 올려놓고 확대한다. ‘사체’는 이렇다. 어느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여자가 아기를 차에 두고 급하게 은행 일을 보는 사이, 불법 주차됐던 차는 견인되고, 아이는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다. 해고 통보를 받은 회사원은 술을 마시고 자신의 집 아파트 뒷산에 올라간 뒤 이튿날 시신으로 발견된다.
우연한 사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여자의 남편이 숨진 남자에게 해고통보를 한 직장상사라는 점을 비롯해 인물과 사건들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하고 순환시킨다. 결국 우연은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게다가 사람들은 본인의 불행만을 생각하지만 시야를 넓히면 이런 불행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며, 더군다나 반복된다. 피와 눈물로 점철된 인류사가 결국 누군가가 보낸 불행한 하루의 집합이라는 시선이 날카롭다.
작가는 단편 ‘얼룩’에서 시간 개념을 잃고 심지어 은행계좌나 전화번호 등 각종 숫자까지 망각해가는 여자의 혼란을 통해 현대인의 강박을 짚어낸다. 단편 ‘어느 맑은 가을 아침 갑자기’에서는 변두리 라이브 클럽의 여가수와 클럽 주인의 자살을 통해 ‘피아노의 검은색, 흰색 건반처럼 미치거나 혹은 죽는’ 절박한 선택에 놓인 사람들 얘기를 그린다.
이 단편들은 하나같이 죽은 자 곁에 있거나 스스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조명한다. 정상과 비정상, 굴복과 저항, 과학과 소설 등의 개념들을 대립시키며 독자로부터 끝없는 각성과 자성을 요구한다. 작가는 ‘동의 없이 태어나 허락 없이 불시착’한 현대인들의 방황과 절망을 그리지만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 모두를 아는 것’이라며 연대의 손길을 내밀기도 한다. 세상을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거대한 변화도 결국 ‘하루’에서 시작된다. 나의 하루를 바꾸고, 타인의 하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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