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ver now]품질에 대한 열망과 독창성, 최고의 구찌백 탄생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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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7일 03시 00분


플로렌스의 첫 매장에서 세계적 명품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

1980년대 로마 매장.
1980년대 로마 매장.
구찌의 역사는 창립자인 구찌오 구찌(Guccio Gucci·1881∼1953)가 1921년 고향인 이탈리아 플로렌스에 돌아와 첫 매장을 열며 시작된다. 당시 구찌의 주력 사업은 유명 장인들이 제작한 최고급 가죽 제품을 엄선해 파는 것이었다. 정교한 솜씨로 만든 구찌 제품에 각국 상류층 고객들은 열광했다. 플로렌스 매장이 상류층 고객들을 끌어들이며 구찌는 1938년 로마에 이어 미국 뉴욕(1953년), 프랑스 파리(1963년) 등으로 진출한다.

세계적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구찌는 1980년대 들어 시련을 맞는다. 사업이 급성장하자 가족으로 구성된 경영진이 갈등을 빚었다. 1993년에는 파산 직전의 적자 기업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구찌는 내부 자원 결집과 인력 영입을 통해 3년 만에 회생할 수 있었다. 도미니코 데졸레와 톰 포드를 발탁하며 구찌는 제2의 전성기에 접어든다.


1984년부터 미국 구찌를 맡아온 도미니코 데졸레는 1995년 구찌그룹 회장으로 임명됐다. 1990년 영입된 미국 출신의 디자이너 톰 포드는 같은 해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다. 두 사람을 통해 구찌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었고 매출은 급신장했다. 1995년 톰 포드가 선보인 가을 컬렉션의 ‘젯셋(jet-set) 글래머’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구찌의 주가도 승승장구했다. 1995년 구찌는 주식을 공개했다. 상장 초기 예상가는 주당 10달러. 하지만 회사 지분의 48.2%는 뉴욕과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에서 주당 22달러에 거래됐다. 1996년 나머지 주식(51.8%)은 주당 48달러에 상장됐다. 2004년 프랑스 명품기업인 피노프랭탕르두트(PPR)가 구찌를 인수하며 소액주주에게 주당 101.50달러를 현금으로 배당했다. 8년 반 만에 구찌의 가치가 10배로 증가한 셈이었다. 명품 패션업계에서 전례 없던 일이었다.

2002년에는 매출규모 15억 유로와 영업 이익 4억5000유로를 달성했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가 선정한 2003년 세계 100대 브랜드에서 구찌는 53위였다. 브랜드 가치로 따지면 51억 달러였다. 당시 87위였던 프라다와 함께 구찌는 100대 기업에 속하는 이탈리아 브랜드가 됐다. 2011년 이 리스트에서 구찌는 39위이며, 브랜드 가치는 87억 달러이다.

2004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들’에서 구찌는 세계 최상위 소매기업 중 7위를 차지했다. 럭셔리 브랜드 기업 중 유일한 기록이었다.

구찌그룹은 2004년 4월 위원회에서 로버트 폴레를 그룹의 회장이자 경영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했다. 또한 2006년 1월 전 펜디의 핸드백 디자이너였던 프리다 지아니니를 구찌 브랜드의 세 부문을 담당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오늘날 구찌는 끊임없는 연구와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구찌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특히 장인들의 섬세한 기술을 비롯해 과감한 스타일과 파격적인 디자인, 엄격한 품질 보증 등은 구찌가 내세우는 전통의 핵심이다.

2004년부터 구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자발적인 인증제 ‘SA8000’을 실시하고 있다. 가죽 제품을 비롯해 슈즈, 의류, 실크, 주얼리를 위한 원자재 공급망까지 이 인증과정을 이수해야만 한다. 구찌코리아는 “이 인증은 구찌가 가진 기업 윤리, 인권 존중, 환경보호, 근로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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