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잘 헤아리라는 말이다. 자신의 눈썹을 볼 수 없듯이 자신을 살피는 것보다 남의 사정을 살피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의미다. 한비자 ‘유로(喩老)’편에 나온다.
“(사람의) 지혜란 눈과 같아 백보 밖은 볼 수 있지만 자신의 눈썹은 볼 수 없습니다(智之如目也, 能見百步之外而不能自見其睫).”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렇다. 한비는 이런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초나라 장왕이 월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두자(杜子)가 간언했다. “왕께서는 무엇 때문에 월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십니까.”
장왕이 답했다. “월나라는 정치가 어지럽고 병력이 약하기 때문이오.” 다시 두자가 말했다. “저는 사람의 지혜가 눈(目)과 같은 것이 걱정됩니다. 장교(莊Q)란 자가 나라 안에서 도적질을 하고 있지만 벼슬아치들이 이를 그냥 두고 있는데 이것은 정치가 어지러운 탓입니다. 병력이 쇠약하고 정치가 어지러운 것은 월나라보다 더한데도 월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니, 이것은 지혜가 눈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장왕은 정벌계획을 멈추었다. 한비는 이 고사를 총평하며 “아는 것의 어려움이란 남을 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는 데 있다(知之難, 不在見人, 在自見)”라고 하면서 ‘명(明)’의 의미를 ‘자견(自見)’, 즉 자신을 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바로 이 말은 노자가 “스스로 아는 자는 명철하다(自見之爲明)”는 말과 함께 읽어보면 그 의미가 통하는 것으로, 통찰력은 기본적으로 남을 아는 것보다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려면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은 만인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자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히 별일도 아닌 남의 문제를 가지고 호들갑 떨기보다는 자신에게 어떤 흠결이 있는지 살펴보고 나서 일을 처리해 나가는 것이 세상을 사는 이치라는 것이다. 물론 손자가 말한 대로 ‘지피지기(知彼知己)’, 즉 남도 알고 나도 아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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