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이었다. 나지막한 탁자를 사이에 두고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기자와 아버지는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이 주는 어색함은 부자(父子) 사이에도 예외가 없었다. 슬며시 책의 첫 장을 폈다. 교과서 대접을 받던 ‘수학의 정석’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수학만 20여 년을 가르친 아버지에게 낯선 책일 리 없었다. 그런데도 당신이 첫마디를 꺼낼 때까지 모르긴 해도 30초는 흘렀던 것 같다. 그 30초는 무척 길게 느껴졌다.
“한 번 읽어는 봤나?” “예.”
아버지는 학교에서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렸다. 조그마한 체구와 살짝 벗겨진 머리, 꼼꼼하고 까다로운 성격에 카랑카랑한 목소리까지. 수학교사 하면 떠오르는, 딱 그 이미지였다. 집에서도 살갑진 않았다. 자상했지만 표현이 서툴렀다. 그래도 기자는 아버지와 마주할 순간을 꽤나 기다렸었다.
중학교 2학년 가을 무렵, 함께 어울리던 친구 셋이 한꺼번에 신생 학원에 등록했다. 그런데 3학년 수학을 배운다더니, 이내 고등학생 형들이 풀던 정석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서울에선 이미 다들 그렇게 한다고 했다. 기자도 조바심이 났다.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다. 2학년이면 2학년 과정을, 3학년 때는 3학년 과정을 잘 배우면 된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 당신이 수학을 가르쳐주겠다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영국의 아이작 뉴턴(1642∼1727)과 독일의 천재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고트프리트 빌헬름 폰 라이프니츠(1646∼1716). 서로를 존경해 마지않던 이 둘은 18세기 초 길고도 지루한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바로 ‘미적분학’의 최초 발견자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1700년대 들어 본격화한 이들의 ‘우선권 주장’은 영국 수학자들과 유럽대륙 수학자들 간의 싸움으로 번졌다. 영국과 유럽대륙은 이를 계기로 100년간 수학 교류를 단절했다. 이광연 한서대 교수(수학)는 ‘수학자들의 전쟁’(프로네시스·2007년)에서 이렇게 썼다.
“인류 역사상 드문 천재로 통하는 두 사람이 시시하게 미적분의 저작권에 관한 싸움을 하지 않고 서로 도와가며 더 깊이 연구했다면 현재 우리 문명은 더욱 진보하지 않았을까.”
지난달 25일 또 한 차례 ‘수학전쟁’이 벌어졌다. 이름하야 아빠와 자녀의 수학 실력 겨루기. ‘결’이 다르고 ‘격’도 다르지만 그 열기만큼은 300년 전 미분논쟁에 못지않았다. 격전장은 서울 서초구 반원초등학교 5학년 1반 교실. 오전 9시 55분, 56분, 57분….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오자 출전(出戰) 선수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사랑하는 아빠 혹은 금쪽같은 아들딸과 결전을 치러야 할 이들.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듯 표정은 굳어 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좀 더 긴장한 건 아빠 쪽이었다. 과연 아빠와 자녀 간의 자존심 싸움은 어떤 결말을 맺었을까.
○ 그날 전장엔 침묵만 흘렀다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는 반원초등학교 임창균 교사의 도움을 얻어 자녀와 함께 수학 문제를 풀어볼 아빠를 모집했다. 출전 의사를 밝힌 아빠는 모두 12명. 물론 상당수는 엄마의 입김이 작용한 덕분이었다. 약속 시간을 10분 앞두고 한 엄마가 임 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새벽까지 술을 마셨던 아빠가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임 교사는 “아버님이 아이 공부를 도와줄 때 다소 강압적이었던 것 같다. 어머님이 새로운 경험을 해봐야 한다면서 대신 신청했는데, 결국 못 오시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결과적으로 아빠 11명과 자녀 11명이 최종 출전자가 됐다.
전원이 자리에 앉은 시간은 10시 5분. 아빠들은 대부분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와중에 “오늘 뭘 하는 거죠?”라며 뒷북치는 이도 있었지만. 아빠들에게 자녀들의 답안지를 절대 훔쳐보지 말 것을 당부하자 아이들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늘 아빠가 본인에게 하던 얘기를 거꾸로 아빠가 듣게 되는 상황이 통쾌한 모양이었다.
A4용지 3장으로 구성된 문제지가 전해졌다. 문제는 국가공인시험인 ‘K-STEM 실용수학능력검정’의 주니어 2급(초등학교 5학년 수준) 기출문제 10개였다. 머쓱한 미소가 번진 뒤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자녀들에게는 절대 성적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공지에 표정들이 한껏 밝아졌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정확히 10시 10분에 시작 신호가 내려졌다. 주어진 시간은 26분, 한 문제당 2.6분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연필로 열심히 줄을 쳤다. 모두 뭔가 골똘히 생각하면서 천장을 한 번 쳐다보더니 이내 문제지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곤 시험지를 빼곡히 메울 정도로 수식을 써 나갔다. 모르는 문제가 쌓일수록 머리를 감싸 쥐는 아빠들이 늘어갔다. 팔을 뻗어 ‘적군’의 지우개를 스스럼없이 가져다 쓰면서도 다행히 시험지를 흘끔거리진 않았다. 감독관의 당부가 생각났거나, ‘그래도 내가 아빤데’란 자존심 때문이었으리라. 1번부터 차근차근 풀어 나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아는 것부터 풀라”는 옛 스승의 가르침을 과감하게 실천했다. 다른 반의 ‘방과후 학교’ 종소리를 듣고선 시간이 끝난 것으로 착각한 아빠들. 놀란 표정과 애처로운 눈빛들이 많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랬다. 그곳엔 “내가 왕년엔 수학 좀 했었다”고 큰소리치던 아빠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만만찮은 문제들에 아빠들은 짐짓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니, 애들한테 이렇게 어려운 걸 가르치면 어떡하나!’ ‘우리 애보다 점수가 낮으면 어떡하지?’ ‘다른 아빠들도 다 마찬가지겠지?’ 따위의 온갖 상념들과도 싸워야 했다. 반면 아이들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사실 아이들로서는 잃을 게 없는 싸움이 아닌가. ▼ 자녀들 64점··· 아빠들은 ‘공부 얼마나’보다 ‘어떻게’에 관심을 ▼
10시 35분. “1분 남았다”란 말이 정적을 깨자 고요하던 교실이 일제히 소란스러워졌다. 마지막까지 검산에 검산을 거듭하는가 하면 5분의 1의 확률에 기대 서둘러 답을 찍기도 했다. 멋쩍은 얼굴로 아이와 답안을 맞춰 보는 이도 보였다. 마지막까지 머리를 감싸고 있던 한 아빠가 머리를 들었다. 백기를 들어버린 그의 얼굴에는 외려 평온이 찾아왔다.
○ 43.3세 vs 10.9세…상처뿐인 승리
아빠 11명 중 최고령은 54세, 최연소는 40세로 평균 나이는 43.3세였다. 전원이 4년제 대학을 나왔고 그중 박사 2명, 석사가 1명이었다. 아무래도 수학을 더 가까이했을 이공계 출신도 5명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수학을 가장 좋아했던 아빠는 2명뿐이었지만 스스로 기억하는 성적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수 7명, 우 3명, 미 1명). 그러나 이날 풀어본 문제의 난이도를 묻자 ‘매우 어려웠다’가 2명, ‘어려웠다’가 8명이었다.
이에 맞선 자녀들의 나이는 평균 10.9세. 2001년생 10명에 2002년생이 1명이었다. 아이들 중에서도 수학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라고 답한 건 2명밖에 없었다. 아빠와 함께 풀어본 문제에 대해선 6명은 ‘어렵다’, 5명은 ‘보통’이라고 답했다.
그럼 결과는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빠들의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65.5점(최고 100점, 최저 30점), 아이들은 64.5점(최고 90점, 최저 20점)이었다. 아빠들의 ‘쑥스러운 승리’였다. 아빠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박권석 씨(42)는 “평소 봐주던 문제와 많이 달라 당황스러웠다”며 “딸은 다 풀었는데 나만 못 풀었으면 어쩌나 걱정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권신일 씨(42)는 “초등학생 문제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될 듯하다.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며 혀를 내둘렀다. 몇몇 아빠는 며칠이 지난 뒤 전화를 걸어와 점수를 슬쩍 묻고는 이내 끊어 버리기도 했다. 박만구 서울교대 교수(수학교육)는 “학부모들이 문제를 어렵게 느끼는 것은 질문을 하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며 “옛날엔 주로 수식에 대한 답만 구하면 됐지만 지금은 초등학교에서도 이해력이나 문제해결 능력을 함께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예상보다 점수가 낮다고 부끄러워할 필요까진 없다는 얘기다.
문제별 정답률을 살펴보면 재미난 구석이 발견된다. 10문제를 난이도별로 나누면 ‘상’ 5문제, ‘중’ 1문제, ‘하’ 4문제였다. 상대적으로 쉬운 ‘하’ 4문제의 경우 아이들 대부분(8∼9명)이 정답을 구했다. 그러나 아빠들은 달랐다. 2문제는 전원이 맞혔지만 1문제는 틀린 사람이 더 많았다. 아빠들은 대신 난이도 ‘상’의 문제에선 상대적으로 좋은 점수를 얻었다. 한편 아빠와 자녀의 점수를 일대일로 비교했을 때 동점자는 딱 한 쌍이었다. 아빠가 이긴 경우가 7쌍, 자녀 점수가 더 높았던 경우는 3쌍이었다. 이 또한 7승 1무 3패로 아빠의 승리.
자녀들의 눈에는 이날의 색다른 경험이 어떻게 비쳤을까. 일부 아이는 수학 문제를 놓고 고군분투하는 아빠의 모습을 신기해했다. 김서연 양(11)은 “아빠가 잘 풀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잘 풀지 못하는 것 같아 놀라웠다”고 했고, 김자원 양(11)은 “시험을 치는 것 같은데, 아빠가 (옆에) 있으니까 느낌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도 “재밌었다” “신선했다” “흥미로웠다” 등의 소감을 표현했다. 아빠들의 설문지에는 “재밌었다”보다 “어려웠다”는 고민의 흔적이 더 많이 발견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 아빠의 관심이 성적을 올릴까?
아빠들 중 일부는 “앞으로 (자녀 교육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겠다”거나 “아이가 좀 더 쉽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과 분위기를 고민하겠다” 등의 발전적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 사실 토요일 오전에 자발적으로 학교를 찾은 아빠라면 교육에 무척 관심이 높은 편에 속한다. 설문에서도 11명 중 4명이 방과후 교육을 ‘부모가 공동으로 책임진다’고 답했고(‘엄마가 전담한다’가 5명), 수학 문제도 ‘자녀가 질문할 때’(5명) ‘가끔’(2명) ‘자주’(1명) 풀어본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아빠들은 그러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제 경험으로도 부모와 함께한 경우 수학의 학업성취도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쁘다”라는 김충훈 씨(45)의 말은 그런 아빠들의 고민을 잘 대변한다.
경기 고양시 양일초등학교 곽해진 교사는 “우리나라에선 교육에 늘 아빠가 빠져 있다는 게 가장 염려된다”며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 그나마 있던 관심도 식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가정에서의 교육방식이 확고하지 않으면 결국 ‘카더라 통신’만 믿고 분위기에 휩쓸려 다닌다고 그는 걱정했다.
그렇다면 ‘아빠의 관심이 수학 성적을 올린다’는 명제는 과연 진실일까.
김유숙 서울여대 교수(교육심리)는 “아빠와 자녀가 함께 학습을 하면 아이와의 상호작용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의미”라면서 “이를 통해 사회성도 기를 수 있고, 가족 간 친밀감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당연히 지적발달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발달심리)는 “해외에서는 아빠와의 상호작용이 빈번한 아이일수록 인지 능력이나 문제해결 능력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아주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곽 교수는 자신의 연구 결과 중 일부도 함께 소개했다. 생후 9개월 된 아이들과 아빠들의 상호작용을 관찰한 적이 있는데, 이 아이들이 지금 만 4세가 됐다. 그런데 당시 아빠들이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놀아준 아이일수록 지능이 더 높더라는 것이다. 그는 “아이 입장에서 보면 엄마의 목소리나 행동은 태아 때부터 자라는 동안 늘 익숙한 것”이라며 “아빠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자극이기 때문에 상호작용의 효과가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아빠의 노력과 학습효과 간 상관관계에는 중요한 전제가 깔려 있다. ‘어떻게’가 ‘얼마나’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부모는 교사나 학원선생님보다 기대가 더 클 수밖에 없다”며 “자녀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때 부모가 자기도 모르게 강압적이 될 수 있는데, 그러면 아이로선 수학에 대한 거부감이 커질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에필로그
21년 전 그날, 아버지는 어쨌든 약속을 지켰다. 아버지가 집합의 원리를 설명했고, 기자는 문제를 풀었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묵묵히 아들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말했다. 앞으론 혼자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기자도 속으론 그게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1년여를 기다린 셈치고는 허무한 결론이었지만 아쉽진 않았다. 아버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수업은 그렇게 끝났다. 이후 기자는 모르는 게 있어도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이유는 확실치 않다. 그냥 학교 선생님이 더 편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날이 뭐라고 해마다 기억이 또렷해지는 걸까. 인상적이었던 대화나 특이할 만한 사건이 없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8년이다.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어김없이 수학의 정석과 작은 탁자가 떠오른다. 혹시 아버지도 그랬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유난히 어색해하던 그날을 아버지도 가끔 생각했을지, 문제를 설명하던 중 ‘because’를 ‘bicause’라고 잘못 썼던 것도 기억하고 계셨을지.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학교에 온 아이들을 보니 또다시 그날이 생각났다. 이 아이들 중 누군가는 20년이 지나도 이날을 기억하겠지?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아버지들도 이날을 함께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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