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치한에겐 단호히 말하고, 강력히 저항하라… 즉석 ‘실천 호신술’ 4가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일 03시 00분


①밀고 ②당기고 ③비키고 ④주저앉으세요

《 집 앞 골목길, 아파트 계단, 대중교통수단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성범죄에 여성들은 불안합니다. 호신술을 배우고 호신장구도 사 보지만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지 또 걱정입니다. 여러분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가 성폭력 범죄의 메커니즘과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실용적인 대응책을 알아봤습니다. 》
○ 골목길의 재구성

새벽 1시, 야근을 마친 당신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당신은 큰길에서 15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하는 주택가의 원룸에 산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선 순간, 기분이 이상하다. 아까부터 들렸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뒤를 돌아보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기분 탓이겠지.’ 당신은 스스로를 위안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집 앞의 가로등 아래에 다다랐다. 별안간 뒤에서 들리던 발소리의 간격이 짧아진다. 순간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달려 나와 당신의 몸을 감싸고 더듬는다. 머릿속이 하얗다.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당신의 몸을 더듬던 누군가가 갑자기 손을 풀고 줄행랑을 친다. 앞집 지붕에서 고양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랐나 보다. 겨우 고개를 돌린 당신의 눈에 줄무늬 운동복에 모자를 쓴 남자가 보인다. 벌써 저만치 도망을 갔다.

집으로 돌아온 당신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대로 주저앉는다. 안도의 한숨과 분노의 눈물이 동시에 쏟아진다. ‘내일도 야근을 해야 하는데….’ 당장 내일 퇴근길이 걱정이다.

자, 이제 당신에게 일어난 일을 되짚어 보자. 몇 가지 원칙과 기술만 알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 미리 위기 상황 시뮬레이션을

호신(護身)은 육감에서 시작한다. 김두나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절대로 위험 신호를 무시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누군가가 나를 몰래 따라오거나 힐끔힐끔 쳐다본다고 느껴지면 바로 마음의 준비를 시작하고, 최대한 빨리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게 좋다.

위험신호가 왔을 때의 태도도 중요하다. 겁을 먹거나 상황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만약 버스 안에서 누가 성추행을 하는 듯하다면 당당히 고개를 돌려 단호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쏘아보라. 소심한 치한들은 자신감 있는 당신의 태도만으로도 당황해 쭈뼛쭈뼛 발길을 돌리게 될 것이다. 여성 호신술 전문가인 김기태 공도코리아 대표는 “여성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 치한들은 자신감이 붙어 더 큰 범행을 저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리 위험 상황과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두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은다. 많은 여성이 위기 상황에선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는데, 미리 준비를 해 두면 순발력 있는 대응이 가능해진다.(‘공격 패턴 분석과 반격 시뮬레이션’ 표 참조) 또 자신의 동선 등 생활패턴을 기반으로 불안요소를 체크해두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앞서 지적했듯이 성폭력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위험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대항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남재성 원주한라대 교수(경찰행정학)의 2006년 연구자료에 따르면 성폭행 범죄자는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에서 ‘호신 장비가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범행 장면을 들킬 위험이 높은 장소에 있고, 방어 준비가 충분히 된 여성은 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호신용품은 꺼내는 것만으로도 치한에게 강력한 경고가 된다. 그런데 호신용품은 위험을 느끼는 즉시 손에 꺼내들고 있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많은 여성이 핸드백 안에 호신용품을 넣어둔다. 막상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여러 가지 소지품 중에서 호신용품만 빠르게 골라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김기태 대표는 여성에게 적합한 호신용품으로 최루액 분사기(페퍼 스프레이)를 추천했다. 휴대가 간편하고, 상대방에게서 일정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너무 가깝게 접근하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이 쉽게 제압당할 수 있다. 단, 최루액 분사기는 정확한 사용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분사구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 후 바람을 등지고 최루액을 뿌리면 된다.

○ 저항하라, 상대가 당황한다


여성들 사이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힘이 세니 저항해봐야 소용이 없다거나, 어설픈 저항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이런 선입견 때문에 많은 여성이 성추행 상황에서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을 해 보면 순발력을 발휘해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2008년 한국의 범죄피해에 관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폭력범죄에 대응하거나 방어행동을 했을 때 더 큰 상처나 피해를 막는 데 도움이 됐다’는 답변은 전체의 41.5%에 이르렀다. 반면에 ‘상황이 더 악화됐다’는 답변은 전체 응답자의 3.8%에 불과했다. 물론 상대방이 흉기를 들고 있거나, 여러 명일 경우에는 물리적 저항 이외의 탈출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좋다.

김두나 활동가는 “통념을 뒤집는 틈을 만들라”고 말했다. 성폭력 사건을 살펴보면 약자인 여성을 강자인 남성이 완력으로 위협하거나 가해하는 상황이 정해진 각본에 따른 것처럼 벌어진다. 그런데 이런 통념(각본)을 뒤집는 순간 상황이 정반대로 흘러갈 수 있다. 상대방이 여자는 힘을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때 적극적으로 소란을 피우거나 괴성을 지르면 상황에 ‘균열’ 내지는 ‘틈’이 생긴다. 이런 것이 불리한 상황을 깨버리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특히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위험 신호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만약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치한이 당신의 입을 막거나 더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려 한다면) 물리적 대응책을 사용해야 한다. 다음은 김기태 대표가 기자에게 가르쳐 준 여성용 호신술 네 가지다.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상대방의 힘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여성들이 실제로 응용하기에 좋다. 남자친구나 가족에게 부탁해 ‘스파링’ 형식으로 충분히 연습을 해 두면 위험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지난달 28일 기자는 이 기술을 처음 배우는 여성(정지현 씨)과 스파링을 해 봤다. 그 결과 파괴력이 만만치 않음을 체험할 수 있었다.

○ 마음속 싸움에서 먼저 이겨라

호신술 동작을 동영상으로 쉽게 배워보자!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거나 인터넷에 직접주소(www.youtube.com/user/o2foryou1)를 입력하면 네 종류의 시범 영상을 볼 수 있다.
호신술 동작을 동영상으로 쉽게 배워보자!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거나 인터넷에 직접주소(www.youtube.com/user/o2foryou1)를 입력하면 네 종류의 시범 영상을 볼 수 있다.
굳이 완력을 이용하지 않고 말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 특히 원래 알고 있던 사람일 경우에는 ‘설득’ 방법이 통할 가능성이 높다. 이때는 상대가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를 내세워야 한다. 법적으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도 좋고, 도덕적인 양심에 호소해도 좋다. 단, “저한테 왜 이러세요?”처럼 의문형으로 끝나는 표현은 피해야 한다. 상대가 대화의 여지가 있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스토커나 모르는 사람에게도 절대로 “어머, 저한테 왜 이러세요?”란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대화를 하게 되면 불편한 상황이 계속 이어질 수 있으며, 당신이 굳이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상대가 할 말이 없도록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한다.

설득의 방법도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당황스럽고 긴급한 상황에서 논리적인 설명을 하기는 어렵다. 가능한 상황을 가정하고 어떤 식으로 설득할지 미리 계획해 두자. 예를 들어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술에 취해 성추행을 시도할 때를 대비해 “내일부터 회사에서 얼굴 못 들고 다니시게 됩니다”라는 말을 미리 준비해 두는 식이다.

도움말=김기태 공도코리아 대표, 김두나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사진 모델=박용덕 씨, 손효주 기자
동영상 모델=정지현 씨, 권기범 기자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치한#실천 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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