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발레, 콜롬비아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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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6일 03시 00분


서울발레시어터 ‘꼬뮤니께’ 초연… 현지 관객들 환호

콜롬비아에서 처음 선보인 서울발레시어터의 창작발레 ‘꼬뮤니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다양한 배경음악과 잘 맞아떨어졌고 고독한 현대인들이 소통을 통해 마음을 여는 과정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했다. 서울발레시어터 제공
콜롬비아에서 처음 선보인 서울발레시어터의 창작발레 ‘꼬뮤니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다양한 배경음악과 잘 맞아떨어졌고 고독한 현대인들이 소통을 통해 마음을 여는 과정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했다. 서울발레시어터 제공
4일 콜롬비아 칼리 시내 중심의 호르헤 이삭 극장 주변은 지저분하고 어수선했다. 극장 맞은편 공터는 타자기를 책상 위에 놓고 글을 모르는 사람들의 편지나 문서를 대신 작성해주는 노인들이 차지했고, 극장 옆 좁은 골목은 구두 닦는 사람들로 붐볐다.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브라질 영화 ‘중앙역’이 떠올랐다.

이 시각 극장 안에선 서울발레시어터(SBT) 단원들이 공연 준비로 바빴다. 제임스 전 상임안무가를 포함해 SBT 단원 13명은 콜롬비아 외교부 초청으로 전날 수도 보고타 로스안데스 대학 라세르나 극장에서 신작 ‘꼬뮤니께(communiqu´e)’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이날 보고타에서 서쪽으로 320여 km 떨어진 인구 240만 명의 칼리에 왔다.

‘살사의 수도’로 불리는 칼리는 지난해 인구 10만 명당 71명이 살해당할 만큼 범죄율이 높은 도시이기도 하다. 마리아 빅토리아 데 크루스 호르헤 이삭 극장장은 “칼리는 뜨내기 외지인이 많이 들어와 도시를 망쳐 놓았다”고 푸념했다.

공연은 무료였지만 이렇다 할 홍보가 없어서 객석을 채울지 걱정이었는데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노인 관객부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들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공연을 시작할 무렵엔 1200석 규모 객석의 절반 정도가 찼다.

꼬뮤니께는 제임스 전이 2년 전부터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발레를 가르치면서 얻은 경험을 모티브 삼아 창작한 60분짜리 현대발레. 보편적 인류애를 담은 이 작품의 초연 무대를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남미로 택했기에 더욱 의미심장했다.

작품은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뛰어났다. 촛불 하나가 무대를 밝히는 가운데 제임스 전이 방석 위에 108배를 하며 경건한 분위기에서 공연이 시작됐고 음악이 그룹 퀸의 ‘섬바디 투 러브’로 바뀌자 무대 뒤편에서 정장 차림의 무용수 7명이 걸어 나와 의자를 활용한 역동적인 춤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드뷔시의 ‘달빛’, 아리랑 등 다양한 색깔의 음악이 이어졌고 이에 따라 춤도 분위기를 달리했다.

바흐의 곡이 흐를 때는 무용수들이 바닥을 구르거나 팔다리를 떠는 동작으로 군중 속 고독을 형상화했다. 몰도바의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세르게이 트로파노프가 연주하는 아리랑 선율이 흐를 때는 서로 다독이고 위로하는 춤사위가 펼쳐졌다. 공연 중간 절도 있는 동작을 반복적으로 삽입해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지막에는 퀸의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가 흐르는 가운데 모든 무용수들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형상화한 뒤 제임스 전이 다시 108배를 올렸다. 내내 조용했던 객석에선 비로소 환호 섞인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연장 밖으로 나서던 관객들은 기자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뷰티풀”을 연발했다.

꼬뮤니께는 이 공연 후 다시 2만 km를 날아와 다음 달 10일 서울 상일동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한국 관객에게 첫선을 보인다.

칼리(콜롬비아)=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콜롬비아#발레#꼬뮤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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