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여름, 조명디자이너 김창기 씨(52)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관람하다 코제트의 생모 팡틴이 침대 위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무릎을 쳤다. 상식적으론 숨지는 순간 조명이 꺼져야 하는데 서서히 밝아졌다가 다시 서서히 어두워졌던 것.
“마치 영혼이 몸을 떠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아, 이게 빛이 가진 힘이구나.”
연출을 공부하러 미국에 갔던 김 씨가 조명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꾼 데는 이 장면이 결정적이었다. 석사학위까지 받고 1996년 귀국한 김 씨는 무작정 연출가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해 11월 그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최인훈 연극제’에서 독일 연출가 마누엘 루트겐홀스트가 연출한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의 조명을 맡아 데뷔했다.
“당시엔 조명디자이너라는 역할에 대해 인식 자체가 없을 때였죠. 조명이란 그냥 무대를 밝히거나 아니면 어둡게 하거나 둘 중 하나였죠.”
그림자를 주요 표현 방식으로 사용한 ‘옛날 옛적에…’에서 조명은 무대에 명암을 주는 역할을 벗어나 장면마다 의미를 부여했다. 이 작품으로 극을 이해하는 ‘조명디자이너’로 인정받았고, 이후 국내를 대표하는 연출가들의 단골 파트너가 됐다.
올해 그가 조명디자인을 맡은 작품만 벌써 열 손가락을 꼽는다. 여수엑스포 해상무대에 올린 창작 뮤지컬 ‘바다의 소녀’, 국립극단이 제작하고 이윤택 씨가 연출한 ‘궁리’, 이성열 연출의 ‘과부들’, 정의신 작·연출의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박근형 연출의 ‘죽은 남자의 핸드폰’ 등이다. 다음 달 18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한태숙 연출의 ‘아워 타운’, 21일부터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이성열 연출의 ‘여행’, 12월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중국 톈신신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
김 씨가 한 해 많게는 15, 16편까지 작업할 수 있는 건 디자인에만 신경 쓰면 되기 때문. 건축디자이너는 설계만 하고 집을 짓는 시공사는 따로 있듯 요즘은 공연 조명 분야도 분업화됐다. 조명 설치하는 사람 따로, 공연 중 조명을 바꾸는 오퍼레이터도 따로 있다. 기계도 좋아져 요즘은 조명 콘솔(조명 컨트롤러)에 미리 정보를 입력할 수 있기 때문에 예전엔 불가능했던 복잡한 조명의 구현이 가능해졌다.
“조명디자이너라고 하면 조명 기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을 것 같지만 사실 대본 분석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먼저 큰 그림을 그리고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극작가, 의상디자이너와 의견을 교환하면서 장면 장면을 어떻게 갈 것인지 구체화합니다.”
그는 화려하고 인위적인 조명보다는 자연스러운 조명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심심하다’ ‘색깔을 좀더 많이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도 종종 듣는다.
“국내에선 조명은 밝고 화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아요. 하지만 외국에선 자연스러우면서도 관객의 시선을 잘 컨트롤하는 조명을 선호합니다.”
디자인의 세계에 끝은 없다. 그는 작품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평소 심리학도 공부하고, 사회 현상을 다룬 소설책도 많이 읽는다. 미술 작품을 보면서 상상력을 키우고, 색상이 주는 효과를 알기 위해 색채심리학도 공부한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보수는 적은 편. 대극장 연극의 경우 한 작품에 300만∼400만 원, 뮤지컬은 500만 원 이상 받지만 소규모 연극은 적게는 30만 원도 받는다. 연간 수입으로 따지면 평균 2000만∼3000만 원. 이것도 국내 톱 디자이너로 꼽히는 3, 4명의 경우에만 그렇다.
“예술가로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없으면 하기 어렵죠. 하지만 내가 작품에 의미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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