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기덕 감독은 부드러운 미소를 선보였지만 4년 만의 신작은 여전히 ‘굳은 얼굴’이다. 오랜 칩거를 끝내고 부드러운 남자로 돌아온 감독의 머릿속 칼은 더 날카로워졌다. 그는 “현대사회의 모든 문제가 돈에서 생긴다”며 사회성 짙은 영화를 예고한 바 있다.
‘악마 ××’라고 불리는 사채업자 강도(이정진)는 무자비한 채권 추심으로 채무자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이다. 피붙이 하나 없이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 어느 날 한 여자(조민수)가 찾아와 “내가 널 버렸어”라고 말한다. 집에 들이닥쳐 설거지를 하고 음식을 차려주며 엄마 노릇을 한다. 엄마의 기억조차 희미한 강도는 여자를 의심하지만 비뚤어진 마음속에는 어느새 모정에 대한 그리움이 자란다. 마음을 열고 엄마를 받아들인 강도. 엄마가 생긴 뒤 그의 잔인함은 누그러진다. 복수만을 노리는 채무자들의 눈에 엄마가 들어온다.
영화에는 김 감독의 전작에서 봤던 가학과 피학이 반복된다. 강도가 엄마에게 인육을 먹이는 장면은 ‘섬’에서 낚싯바늘을 삼키던 장면과 연결되고, 채무자를 협박해 신체를 절단하는 장면은 ‘해안선’의 낙태 장면 등과 겹쳐진다. 난무하는 거친 욕설과 청계천을 배경으로 기계들이 뿜는 위압감을 담아낸 장면에서도 ‘김기덕 영화’임을 확인할 수 있다.
감독 특유의 ‘반(半) 추상성’도 여전하다. 현대 자본주의의 상징적 문제인 사채업의 폐해는 사실적으로 그려낸 반면 후반부 복수와 용서를 암시하는 메시지는 초현실적인 장면들에 녹아있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보다는 극단적인 인물과 상황으로 머리보다 가슴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처럼 그의 메시지 ‘해독’에 어려움을 겪었던 관객은 이 영화가 좀더 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미스터리 기법을 활용해 엄마의 정체를 추적하는 이야기는 이전 영화들보다 소화하기 어렵지 않다. 4년 만의 복귀를 의식해 대중성을 높이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단,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일찍 결말을 예상할 수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배우로서 내세울 만한 필모그래피가 없던 조민수는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짧은 대사들 속에 녹아든 힘 있는 연기가 설득력이 있다.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정진의 연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악마성과 여린 심성을 가진 이중적인 캐릭터의 부담에 눌린 기색이 역력하다. 대사처리는 부자연스럽고 표정은 과장돼 들떠있다. 조연배우들의 연기도 어색하다. 이야기를 상황 설정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 받는 데 익숙한 요즘 관객에게 조연들이 쏟아내는 직접적인 메시지들은 당혹스럽다. 2억 원이 안되는 제작비 때문이겠지만 사운드와 화면의 완성도도 미흡하다.
김 감독의 최대 흥행기록은 2002년 개봉한 ‘나쁜 남자’의 29만8000여 명(서울관객 기준). 쉬운 이야기로 대중성을 높였다지만 불편한 장면이 가득한 이 작품에 관객은 얼마나 지갑을 열까. 제작사는 베니스영화제에서의 수상이 흥행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피에타’의 수상 여부는 8일 오전 2시(한국 시간)부터 열리는 시상식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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