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분야의 파워라이터인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가 4월에 낸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를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다시 썼다. 전작에 나오는 부제 ‘전통건축 그 종의 기원’이 진화론에 기반을 둔 저자의 접근법을 짧게 요약한다.
한국 고건축의 아름다움 하면 곡선미를 떠올린다. 대표적인 사례가 여인의 버선코처럼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와 신체치수 ‘37-49-43cm’로 미술사학자 고유섭이 ‘완만한 곡선’이라고 표현했던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다. 이 곡선미는 한국인의 뛰어난 안목과 미의식의 산물이라는 게 미술사학자들의 해석이다.
도면을 그려 건물을 올려 짓는 일을 업으로 하는 건축가가 이 대목에서 딴죽을 건다. 과연 목수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추녀를 들어올리고 배불뚝이 기둥을 만들었을까. 현대건축 전문가인 저자는 해답을 얻기 위해 오랜 세월을 견디어 살아남은 고건축의 유구(遺構)와 해외 건축 사례에 자신의 논리를 더해 퍼즐 맞추기를 시도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추론은 고건축의 생김새가 비와 바람과 중력을 견뎌 단종(斷種)과 멸종(滅種)의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적화의 산물이라는 것. 고건축의 아름다움은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얻게 된 우아한 결과물일 뿐이라는 해석이다.
추녀 얘기부터 들어보자. 추녀는 멀리 허공으로 뻗어 있는데 이는 구조적으로 위험하고 시공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기를 쓰고 멀리 뻗으려는 이유는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래야 건물을 받쳐주는 기둥이 비에 젖지 않기 때문이다. 비가 그치고 햇빛이 비칠 땐 기둥도 말라야 한다. 추녀를 쳐들면 그만큼 기둥 아래가 더 많은 빛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중국 고건축의 추녀가 남쪽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가파르게 치솟아 있는 이유도 설명해준다. 저위도 지역에선 태양이 높이 뜨기 때문에 추녀도 그만큼 들려 있어야 기둥 아래가 햇빛을 받을 수 있다.
다음은 배흘림기둥 차례다. 혜곡 최순우 선생이 기대어 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는 그 기둥이다. 기둥의 중간 부위를 굳이 불룩하게 다듬어 놓은 이유는 중간 부분이 가늘어 보이는 착시현상을 보정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저자는 주초를 만들기 위한 돌의 가공작업량을 줄이기 위해 굵은 나무 기둥을 적당히 깎아놓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무를 깎는 것이 돌을 다듬는 것보다는 쉬운 작업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며 비전공자로서 ‘민족 신앙’처럼 굳건한 고건축의 미의 근원을 따져든 데 대해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치열하고 절박한 작업의 결과물이 아니면 그 대상은 아름다울 수 없다”는 저자의 결론은 한국 미술사의 큰별 혜곡 선생이 무량수전에 대해 “이것은 족히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라고 했던 분석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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