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joy]해인사 홍류동 골짜기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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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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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황매산 해발 930m 평원의 억새밭. 억새꽃이 하나둘 피어나 은물결 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9월 말쯤부터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억새밭 너머엔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줄기가 첩첩 주름으로 아슴아슴하다. 아침 햇살에 이슬과 버무려진 억새꽃이 
황홀하다. 붉게 물든 석양의 억새꽃은 붉은 바다처럼 일렁인다. 억새는 바람이 불 때마다 서로 몸을 비비며 서걱서걱 마른 울음을 
울어댄다. 붉은 고추잠자리 떼가 둥근 원을 그리며 농악대처럼 윙윙 빠릿빠릿 날아다닌다. 만지면 주르륵 파란 물이 흐를 것 같은 
하늘에 양떼구름이 떠 있다. 합천 황매산=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합천 황매산 해발 930m 평원의 억새밭. 억새꽃이 하나둘 피어나 은물결 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9월 말쯤부터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억새밭 너머엔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줄기가 첩첩 주름으로 아슴아슴하다. 아침 햇살에 이슬과 버무려진 억새꽃이 황홀하다. 붉게 물든 석양의 억새꽃은 붉은 바다처럼 일렁인다. 억새는 바람이 불 때마다 서로 몸을 비비며 서걱서걱 마른 울음을 울어댄다. 붉은 고추잠자리 떼가 둥근 원을 그리며 농악대처럼 윙윙 빠릿빠릿 날아다닌다. 만지면 주르륵 파란 물이 흐를 것 같은 하늘에 양떼구름이 떠 있다. 합천 황매산=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내가 죽으면
이 가을 물소리 들을 수 있을까.
피 맞은 혈관의 피와도 같이
골짜기 스미는 가을 물소리.

하늘 저물면 물로 접어서
동해로든 서해로든 흘려보내
이 몸의 피 다 마를 때까지
바위에 앉아 쉬어 볼거나.

이 몸의 피 다 말라서
그냥 이대로 물소리같이
골짜기 골짜기 스며 볼거나
가을 물소리로 스며 볼거나.

-김현영 ‘가을 물소리’ 전문


가야산 해인사 홍류동 계곡에 물이 흐른다. 봄 철쭉꽃이 피고, 가을 단풍이 들면 ‘물도 붉게 흐른다’는 ‘홍류동(紅流洞)’ 계곡. 초록은 아직 지치지 않았다. 하지만 나무 이파리가 눈에 띄게 여위었다. 한여름 기름 자르르 하던 것보다 한결 메말랐다. 10월 말쯤이면 나무의 피는 다 말라, 계곡 물은 붉디붉게 물들어 흐를 것이다.

잘잘잘잘! 졸졸졸졸! 가을 물소리는 담담하다. 그윽하고 다소곳하다. 촬촬! 철철철! 소리는 잦아들었다. ‘우렁우렁!’ 멀리서도 힘차게 들리던 그 소리가 이젠 ‘웅얼웅얼∼’ 중얼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갈수록 나직하게 가라앉아 가슴에 스며든다.

신라 말 최치원(857∼?)도 바로 홍류동 가을 물소리에 반해 이곳에 숨었으리라. 신라 최고의 천재 소년. 열한 살 때(868년) 당나라에 유학, 6년 만인 874년 당나라 과거시험(외국인을 위한 빈공과)에 당당히 합격한 공부벌레. “10년 내에 합격하지 않으면 내 아들이라 하지 않겠다”던 그의 아버지와 ‘공부할 때 가시로 살을 찌르며 졸음을 쫓았던’ 어린 아들. ‘민란을 일으킨 황소가 읽다가 너무 놀라서 침상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토황소격문’으로 당나라에 이름을 날린 문장가. 스물일곱 때(884년) 고향 신라에 돌아와 야심만만하게 포부를 펼치려 했던 유학파 청년.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그는 신라 17관등 가운데 6등위까지만 오를 수 있는 육두품 출신이었던 것이다.

최치원은 마흔 즈음에 미련 없이 벼슬을 버렸다. 서른일곱 때(894년) 진성여왕에게 10조개혁안을 올린 게 마지막이었다. 예상대로 귀족들의 반발이 거세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동안 전북 태인(태산군), 경남 함양(천령군), 충남 서산(부성군) 태수를 전전하며 뜻을 펴보려 했지만 무력했다. 함양 태수 시절 홍수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나무를 심어 상림, 하림을 만든 것도 그였다.

최치원은 887년(진성여왕 원년)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의 비문을 짓고 글씨도 직접 썼다. 지금 봐도 글씨가 날아갈 듯 힘차고 생동감이 넘친다. 나이 서른, 그때만 해도 그는 세상을 한번 바꿔 보려는 열정이 뜨거웠음을 알 수 있다. 머지않아 세상이 먼저 그를 바꾸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첩첩 바위들 사이 미친 듯 내달려 겹겹 쌓인 산들 울리니/지척 사이 사람 말소리조차 구분하기 어려워라/시비 다투는 소리 귀 닿을까 늘 두려워/흐르는 물로 산을 통째 두르고 말았다고 일러주네’

―홍류동 암벽에 새겨진 최치원 ‘가야산독서당’

최치원은 홍류동 계곡에서 속세와 담을 쌓고 살았다. ‘세상 다투는 소리’ 귀에 닿을까, ‘홍류동 물소리’로 온 산을 통째 둘둘 말아버렸다. 가끔씩 인근 합천 매화산 청량사나 경주 남산, 그리고 하동 쌍계사, 동래 해운대로 산천 구경하러 가는 게 전부였다. 그의 기록상 행적은 쉰한 살(908년)까지가 끝이다. 그 이후론 발자취가 아득하다. 산천을 떠돌다가 눈을 감았다느니, 신선이 되었다느니, 전설로 남았을 뿐이다.

해인사 소리길은 최치원의 길이다. 홍류동 골짜기를 따라 걷는다. 일 년 내내 시냇물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느릿느릿 해찰하며 걸어도 3시간이면 너끈하다. 6.3km의 시오 리 남짓한 거리.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적잖이 눈에 띈다. 거북 등딱지의 붉은 소나무가 우뚝우뚝 서 있다. 기기묘묘한 바위가 발길을 잡는다. 곳곳에 아직도 최치원의 발자취가 오롯이 남아 있다. 그가 수도하던 농산정(籠山亭), 그의 시가 새겨져 있는 암벽 치원대, 붓을 씻었다는 바위 체필암, 그곳에 앉아 글도 쓰고 시도 읊었다는 완재암….

가을 물소리는 서두르지 않는다. 잔잔하고 조곤조곤 흐른다. “촐∼촐∼촐!” 애틋하고 정갈하다. 소리길은 삼라만상 온갖 소리가 가득하다. 귀똘귀똘! 베짱베짱! 찔르르 찌르르! 풀벌레 울음소리가 가을 물소리 틈새로 배어 나온다. 솨아! 솨아! 선선한 솔바람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뎅그렁 뎅그렁! 해인사 종소리가 묵직하게 가슴을 저며 온다. 띵그렁∼ 떼엥∼ 딩그렁∼ 풍경 소리가 양념처럼 앙증맞게 버무려진다. 마른 가을 숲 냄새가 향긋하고 구수하다.

해인(海印)은 ‘바닷물에 도장처럼 박힌 달’이다. 온갖 허튼소리에도 변치 않는 부처님 말씀이다. 나의 참모습이다. 마음이 흔들리면 참나가 드러나지 않는다. 물결이 출렁이면 달은 물에 담기지 않는다. 잔잔한 물이라야 달과 구름이 일그러지지 않고 비친다. 조선시대 홍류동 암벽에 새긴 수많은 선비들 이름이 이젠 물결에 닳고 닳아 흐릿해졌다. 부질없어라! 그까짓 이름 석 자!

해인사는 부처님 말씀을 모신 절집이다. 대장경판(국보 제32호)은 정확히 8만1258장에 5200여만 자가 새겨져 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불경도 자그마치 1510여 종이나 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씀이 산처럼 쌓여 있으면 뭐 하나. 단 한 가지라도 행하는 게 중요하다. 말씀대로 사는 게 으뜸이다. 경판은 판전(국보 제52호)에 모셔져 있다.

판전은 가야산 솔바람 골바람이 오가는 중간에 서 있다. 헐렁한 한복처럼 소박하고 단순하다. 그 넉넉한 품으로 경판을 1000여 년 동안이나 고스란히 보존해 왔다. 부처님 품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판전은 부처님 말씀을 품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집’(김후란 시인)인 셈이다. 소리길은 그 가장 큰 집을 향한 수행길이다.

‘여기/살아계신 말씀들/때로는 하늘을 날아요/하늘 너머 저승까지 날아갔다가/또 와요//침묵으로 다지고 다져 여기 살아계신/말씀들/때로는 소리가 되어/징∼∼∼∼/우리의 영혼으로 들어오셔요/영혼의 깊은 골짜기/호젓하게 피어있는/꽃 속으로 스며들어요’

―문효치 ‘팔만대장경판’ 전문
▼황매산 억새밭과 모산재

조선 천하명당 무지개 터… 국사당… 에너지가 넘친다

합천은 에너지가 넘치는 땅이다. 기(氣)가 센 곳이 많다. 이 중에서도 ‘모산재(767m)-황매산(1108m) 일대’는 풍수 전문가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곳이다. 모산재는 온통 바위 덩어리로 이뤄졌다. 억센 사내의 힘줄 같은 바위 봉우리가 우뚝우뚝하다. 가야산 혈맥이 황매산을 거쳐 이곳에 한데 뭉쳐 있다고 한다. 조선 천하으뜸 명당으로 꼽히던 무지개 터가 이곳에 있다. 여기에 묘를 쓰는 사람은 엄청난 복을 받지만, 그 한편으로 조선팔도에 가뭄이 들어 사람이 살지 못한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산자락 국사당도 예사롭지 않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조선 창업을 위해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했다는 곳이다. 그만큼 기운이 세다. 폐사지 영암사 터는 모산재 바위 기운이 한데 뭉쳐 있는 지점이다. 꽃 중의 꽃인 혈처인 셈이다. 남아 있는 축대, 탑비 거북들이 꿈틀꿈틀 살아 숨쉬는 것 같다.

한마디로 합천 기운은 황매산 자락에 있고, 그중에서도 모산재가 으뜸이며, 모산재에서는 무지개 터와 영암사지가 핵이라는 것이다. ‘영암사지∼돛대바위∼무지개 터∼모산재∼순결바위∼국사당∼영암사지’로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

황매산은 모산재를 품고 있는 큰 산이다. 봄 철쭉이 장관이다. 해마다 5월 중순께면 해발 900여 m의 기슭 6만여 평(약 19만8000m²)이 온통 붉게 출렁인다. 가을엔 억새가 은물결을 이룬다. 바람결에 억새 잎이 부딪혀 서걱서걱 울어댄다. 서로 마른 뼈를 부비며 목쉰 소리를 낸다.

400살 거북 등껍질의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적송(천연기념물 제289호).
400살 거북 등껍질의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적송(천연기념물 제289호).
억새는 황무지나 거친 산비탈에서 자란다. 산마루에서 하늘을 향해 흔들린다. 겨울에도 산기슭에서 칼바람 맞으며 노래 부르는 게 억새다. 갈대는 축축한 강가나 냇가에서 자란다.

황매산 억새밭 너머로 붉은 해가 걸린다. 한순간 억새밭에 불이 활활 타오른다. 군데군데 서 있는 앉은뱅이 소나무에도 불이 붙는다. 황홀하다. 꺽꺽 꾸루룩! 장끼 한 마리가 몽당연필 같은 뭉툭한 소리를 내며 날아오른다. 고추잠자리들이 윙윙거리며 맴돈다. 하늘엔 붉은 이불솜들이 실타래처럼 풀어져 있다.

황매산 해발 830m 기슭엔 오토캠핑장이 있다. 30대 규모. 사방이 툭 트여 저절로 가슴이 뻥 뚫린다. 밤엔 눈부신 별 부스러기들이 무수히 떨어진다. 이미 캠핑 마니아들 사이에선 소문났다. 캠핑하면서 산책 삼아 모산재를 거쳐 황매산 정상에 오르는 것도 즐거움이다. 황매산 봉우리에선 발아래 합천호는 물론이고 저 멀리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이 보인다.
▼합천 영상테마파크


영화-드라마 80편 촬영한 ‘추억의 세트장’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경교장, 서울 종로 뒷골목 피맛골, 서울 거리를 달렸던 전차, 이승만 전 대통령이 거처했던 이화장, 조선총독부 건물, 서울역 옛 역사, 일제강점기 한국은행 건물, 1930년 미쓰코시백화점(현 신세계), 원구단, 옛 반도호텔, 옛 소공동거리, 옛 수도경찰청, 경성라디오방송국, 파고다극장, 세브란스병원, 동화백화점, 전당포, 폐허가 된 평양시가지….

1920년대 서울(경성) 거리를 거닐며 할아버지 세대의 삶을 떠올린다. “아하, 그땐 그랬구나!” 하고 1960, 70년대 시외버스배차장 대합실에 앉아 추억을 되새김질 해본다. 1970, 80년대 ‘트라이 속옷 선전’ 화면을 보며 웃음을 짓는다.

옛 전차길이 있는 일제강점기 서울 거리.
옛 전차길이 있는 일제강점기 서울 거리.
합천 영상테마파크는 단순한 드라마 세트장이 아니다. 한 시대를 고스란히 옮겨다 놓은 곳이다. 영화나 드라마가 촬영되면 될수록 더욱 많은 자료가 쌓이는 종합세트장이다. 7만5000m²(약 2만2700평)의 땅에 크고 작은 옛 건물이 150여 채나 된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온 듯 자신도 모르게 추억에 잠긴다.

2003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촬영하면서 만들어졌다. 그 후 ‘서울 1945’ ‘에덴의 동쪽’ ‘경성스캔들’ ‘백자의 사람’ ‘포화 속으로’ ‘바람의 파이터’ ‘모던 보이’ ‘전우치’ ‘고지전’ ‘각시탈’ 등 약 80편을 찍었다. 전국 각지의 수많은 세트장이 한두 번 쓰이고 흉물로 남아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운영도 흑자다. 촬영 장면을 직접 볼 수 있어 연 3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2시간 정도면 그런대로 즐길 수 있다. 합천군은 정치시대극을 위해 청와대 건물 세트장도 조만간 마련할 예정이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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