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으로 피신 갔던 선조가 1593년 서울로 돌아와 거처하면서 이 궁의 역사가 시작됐고, 광해군 때 ‘경운궁’이란 이름이 주어졌다. 인목대비가 유폐됐던 곳이자 인조가 즉위한 궁이었다. 1897년 고종은 아관파천 후 오랫동안 궁의 기능을 상실했던 이곳에 돌아와 같은 해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그러나 궁을 되살리려는 왕의 꿈은 일제에 의해 좌절됐고 고종은 1919년 이곳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았다.
이렇듯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이 바로 덕수궁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는 이곳의 사연과 문화유산을 예술가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덕수궁 프로젝트’를 19일∼12월 2일 펼친다. 중화전 정관헌 등 6개의 전각과 후원을 무대로 김영석 류한길 임항택 정서영 최승훈+박민선 성기완 등 작가, 디자이너, 무용가 등 12명이 9개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더불어 덕수궁 미술관에선 10월 28일까지 50여 점이 전시된다.
궁과 현대미술이 조우한 이번 프로젝트는 박제된 유산이 아니라 살아있는 궁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궁을 이리저리 꼼꼼히 다시 보게 하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석어당의 대청마루에 올라 인목대비의 슬픔을 표현한 이수경 씨의 눈물 조각을 감상하고, 덕홍전에선 하지훈 씨의 은빛 크롬 도장 의자에 앉아 쉴 수도 있다. 류재하 씨는 중화전에 미디어 영상을 쏘아올리고, 고종의 침전으로 건립된 함녕전에선 서도호 씨의 영상과 정영두 씨의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중화전 행각에 앉아 아나운서가 들려주는 궁중소설을 감상하는 재미도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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