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단편소설 한 편 쓰는 일로 숨을 고르고 하반기엔 장편 작업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단편 쓰는 일에 실패했어요. 새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소설가 신경숙(49)이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지난해 4월 미국에서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출간된 이후 34개 나라와 출간 계약을 하고 세계 독자들을 위해 국내외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쁘게 지냈던 그다.
“저는 10년 단위로 글쓰기 작업을 생각해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이러이러한 작품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 중에 한 작품만 빼고 다 완성했어요. 제 안에는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몇 개의 항아리에 담겨 있지만, 다음 작품으로 어떤 항아리 뚜껑이 열릴지는 조금 더 기다려봐야 알 것 같아요.”
올해 창간 40주년을 맞은 월간 문학사상과 이달 초 가진 특별 인터뷰에서 그는 ‘엄마를…’ 성공 이후의 생활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세계라는 무대에 올려진 신인 배우 같다. 늘 긴장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영민 문학사상 주간(단국대 석좌교수)과의 이번 인터뷰는 40주년 특집호로 꾸미는 10월 호에 실린다.
지난달 그는 영국 에든버러 축제에 다녀왔다. 전 세계에서 작가 50명만 초대장을 받은 행사다. 그는 한 파키스탄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내 작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 작품이 영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에는 나보다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많다’고 말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저도 제 위치를 깨달았어요.”
그는 3월 홍콩에서 열린 맨아시아문학상 시상식 당시의 일화도 들려줬다. 각국 기자들이 수상자 발표 전 유력 후보인 일본의 요시모토 바나나나 인도의 아미타브 고시 앞에 몰려 있다가 신경숙의 이름이 호명되자 급하게 자기를 찾더라는 것.
그는 ‘엄마를…’에 대해 “작품의 운명이 있다면 운을 아주 좋게 태어난 작품”이라며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범위를 넘어버렸다. 책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닌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힘은 무엇일까. “우리가 집을 떠나 노마드적 삶을 살아가는 지금의 현대인이 되는 동안 우리도 모르게 상실했던 것들을 이 소설 속에서 만난 것은 아닐까, 항상 곁에 있을 줄 알았던 ‘엄마’라는 사람을 갑자기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이야기 속에서 각자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요.”
1년간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객원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8월 귀국한 신경숙은 요즘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미명 속에서 책상 앞에 있다가 동이 트는 과정을 맞이하는 일이 “가슴 벅차고 정신을 화들짝 깨어나게 한다”고 했다. 오전 9시 반 동네 요가원에 들러 1시간 동안 요가를 하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친구들과 어울린다.
‘엄마를…’ 이후 문단에선 ‘한국 문학의 세계화’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졌다. 하지만 그는 “한국 문학의 세계화란 말에는 처음부터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말 속에는 한국에서 한국어로 쓴 작품을 한국 문학으로만 한정하는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작가가 자기 언어로 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가 세계 문학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해요. 다만 소통을 위해 번역과 출판이라는 과제가 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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