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워 타운 ★★★☆ 죽음만이 진짜라는 섬뜩함
달빛 속으로 가다 ★★★☆ 어두운 과거에 대한 씻김굿
죽음은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할 삶의 연속인 걸까, 아니면 새로운 삶을 위해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매듭인 걸까. 대조적인 방식으로 죽음을 응시한 연극 두 편이 나란히 공연 중이다. 하나는 20세기 초 미국 동북부 작은 마을을 무대로 한 미국 극작가 손턴 와일더의 ‘아워 타운’(한태숙 연출)이다. 다른 하나는 20세기 말 심심산골 암자를 무대로 한 한국 극작가 장성희의 ‘달빛 속으로 가다’(김철리 연출)이다.
‘아워 타운’은 매년 지구촌 어디선가 반드시 한 편은 공연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대표적인 일상극이다. 소설로 한 차례, 희곡으로 두 차례 퓰리처상을 수상한 와일더는 이 연극을 통해 우리네 인생살이의 차별적이고 극적인 요소보다는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요소에 초점을 맞췄다. 극적인 요소를 중시한 기존 연극이 현미경으로 인간을 들여봤다면 ‘아워 타운’은 저 우주 밖에서 망원경으로 인간을 조망한다.
연극에서 그 망원경의 배율을 조절하는 이가 무대감독(서이숙)이다. 무대감독 역의 배우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조율하면서 관객들이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도록 끊임없이 극의 흐름에 개입한다.
1막과 2막에선 풋풋한 고교생 조지(박윤희)와 에밀리(정운선) 두 집안을 중심으로 소소하지만 깨알 같은 일상이 약간의 유머가 곁들여진 채 진행된다. 그러다 3막에서 갑자기 비극으로 치닫는다. 조지와 결혼한 뒤 3년 만에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는 에밀리를 통해 그토록 소소해보였던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인간의 어둡고 축축한 내면세계에 현미경을 들이대 왔던 연출가 한태숙은 생동감 넘치는 1막과 2막에선 무대를 거의 텅 비워둔 채 연극연습처럼 이야기를 풀어가다 3막에서 섬세한 대형 세트로 채워간다. 그것은 ‘삶은 죽음을 위한 연습’이라는 관점을 넘어서 ‘삶은 가짜에 불과하고 죽음만이 진짜배기’라는 섬뜩함을 심어준다.
반면 새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문화관광부 주최 ‘2000년 새로운 예술의 해 희곡 공모’ 당선작인 ‘달빛 속으로 가다’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씻김굿 같은 작품이다. 영불암에 모여 하룻밤을 보내게 된 한 무리의 남녀가 저마다 가슴속에 묻어뒀던 한 많은 죽음의 사연을 해원의 달빛 아래 풀어나간다.
“사람은 숨이 다해 죽는 게 아니라우. 아무도, 가슴속에 품고 있는 이가 없으면 그제야 죽는 거라우. 처니(처녀)가 죽으믄 청년은 누가 기억해 주겠수. 가슴에 이래 품고 있다가 세월이 놓아주면 훨훨 끈 떨어진 연처럼 저세상으로 보내 주시우” 같은 아름다운 우리말 대사가 일품이다. 또 이를 풀어가는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도 볼만하다.
20세기의 아픔을 씻어내고 희망의 21세기를 열어가자는 염원이 담긴 이 작품의 초연무대를 연출했던 김철리 씨는 12년 만에 같은 작품을 올리면서 원작의 ‘따뜻한 달빛’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다만 무대 좌우 벽을 스크린으로 활용해 새천년에도 등장인물들의 번민과 방황이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영상을 투영함으로써 21세기에도 여전히 ‘스산한 달그림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차갑게 직시한다.
‘아워 타운’에서 죽음이 모든 인류의 미래이자 최종 목적지라면 ‘달빛 속으로 걸어가다’에서 죽음은 어두우 과거이자 씻어버려야 할 한(恨)의 응어리다. 당신에게 죽음은 둘 중 어느 쪽에 가까운가.
: : i : : ‘아워 타운’은 14일까지 서울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1644-2003. ‘달빛 속으로 가다’는 7일까지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1만∼2만 원. 02-399-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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