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0년 1월 1일. 전날 밤 송년회를 하느라 녹초가 된 남자는 침대에서 기어 나와 두 발을 질질 끌며 화장실로 향한다. 세수를 하는 동안 거울과 변기, 배수구에 장착된 수백 개의 센서가 남자의 입김에서 뿜어져 나온 분자들과 몸속의 혈액을 분석한다.
화장실을 나온 남자는 집 안의 모든 가구와 가전제품을 생각만으로 작동시키는 전선을 머리에 두른다. 잠시 후 집 안의 온도가 상승하고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콘택트렌즈를 착용하자 바로 인터넷 창이 시야에 들어온다. 남자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오늘의 헤드라인 뉴스를 읽는다. 화성 기지의 혹한, 고대에 멸종된 검치호랑이 화석의 DNA 복원 소식, 우주 엘리베이터 관광객 운항 소식 등이 흘러나온다.
남자는 초전도 고속도로를 거쳐 출근한다. 자기력을 이용해 자동차와 트럭 등이 모두 도로 위에 떠서 매끈하게 날아가기 때문에 연료 소모가 거의 없다. 그는 “21세기 초까지만 해도 자동차나 열차가 마찰력을 극복하는 데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비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자의 나이는 72세다. 그러나 신체 장기와 근육의 상태는 지금의 서른 살쯤에 해당한다. 유전학적으로 몸의 세포를 수정해 몸이 갈수록 더 젊어진다. 남자는 양자컴퓨터를 활용해 로봇을 설계하는 전문가다. 로봇 시장의 규모는 20세기의 자동차 시장보다 크다. 올해 61세인 아내는 첫 아기를 임신했다. 아내는 로봇이 할 수 없는 창조적인 직업을 찾아 관광가이드, 변호사, 웹디자이너 등으로 직업을 바꿨다. 남자는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만든 우주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내와 함께 우주로 신혼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가 저녁에 귀가하니 거실의 벽지 스크린에 로봇 의사가 나타난다. 의사는 “오늘 아침에 화장실 거울에 설치된 DNA 센서가 당신의 췌장에서 암세포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는 암세포가 종양으로 자라기 전에 초소형 나노봇을 이용한 치료를 받기로 한다. 그는 지난해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다가 사고를 당했을 때도 당시 입고 있던 옷에 내장된 칩이 자동으로 구급차를 부르고, 과거의 진료기록과 현재 몸 상태를 구급대원들에게 알려줘 구조됐다. 이 시대에는 옷을 입고 있는 한 온라인 상태다.
이 책은 양자물리학이 100년 후 인간의 일상을 어떻게 바꿀지 내다본 미래학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평행우주’ ‘불가능은 없다’를 썼고 TV 과학다큐멘터리 진행자로도 알려진 이론물리학자. 그는 의학, 생명공학, 우주과학 등을 연구하는 첨단과학자 300여 명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현대물리학을 쉽게 해설한다.
저자는 실리콘 트랜지스터의 성능이 18개월마다 두 배로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이 2020년경 종말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아무리 작게 줄여도 트랜지스터가 원자 크기 이하로는 줄어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는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이나 나노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신소재를 개발하지 못하면 세계 경제는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언급한 과학기술은 이미 알려져 있는 물리학 법칙에 따른 것이며, 모두 이미 시제품이 만들어졌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윌리엄 깁슨의 “미래는 이미 여기에 와 있다. 단지 사방에 고르게 분포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러나 문제는 상상력이다. 이 책은 과학적인 반면 미래학 서적 특유의 기상천외한 참신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쥘 베른은 1863년 출간된 ‘20세기 파리’에서 인터넷까지 예견했다지 않은가. 온난화나 환경파괴, 전염병, 테러 같은 사회적 문제까지 과학기술 발전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오히려 미덥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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