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아 씨(39)는 오페라 무대 밖의 ‘멀티맨’이다. 지휘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리허설 직전까지 지휘자 대신 성악가를 훈련시킨다. 직접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다른 성부의 노래를 불러주고 발음도 교정한다. 본공연에서 정확한 지점에 조명이 들어가도록 사인을 주거나 무용수의 등장과 퇴장을 지시할 때도 있다. 이렇듯 다양한 역할을 하는 그의 직업은 ‘오페라 코치’다.
오페라 역사가 짧은 국내에서는 오페라 코치라는 직함이 아직 귀에 익지 않았지만 유럽에서는 지휘자 경력을 쌓기 위해 필요한 과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명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도 1956년 뒤셀도르프의 ‘도이체오퍼 암 라인’에서 코치로 일하다 2년 뒤 이 오페라단의 지휘자가 됐다. 마레크 야노프스키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지휘자도 독일 중소도시 오페라 극장의 코치로 경력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피아노를 전공한 그는 독주보다 성악 반주가 더 즐거웠다. ‘성악의 본고장은 이탈리아’라는 생각에 1997년 유학을 떠났다. 성악 반주를 배우고자 여기저기 알아보다 오페라 코치 과정을 만났다.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방에 있는 스폴레토 극장에서 2년마다 24세 미만의 젊은 음악도를 선발해 오페라 코치로 키우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당시 오페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관련 경력도 없었지만 지원자 80여 명 중 10명의 이름이 적힌 합격자 명단에 ‘기적처럼’ 그의 이름이 포함됐다. 그 프로그램에 뽑힌 최초의 동양인이었다.
“이탈리아 정부의 후원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를 하고, 오페라 시즌에는 현장에 투입됐어요. 막(幕)을 밧줄로 묶는 법부터 무대 뒤에서 일어나는 다채로운 일을 직접 경험하면서 살아있는 오페라의 매력에 빨려 들어갔지요.”
1998∼2000년 스폴레토 극장에서 일하는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그는 “한국인이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코치를 하는 건 한국 사람에게 창을 전수하는 외국인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은근한 무시와 노골적 차별을 견뎌야 했다. 그럴 때마다 이탈리아어를 더 연마하고 이탈리아 문화를 익혔으며 악보를 파고들었다.
오페라 코치로서 첫손에 꼽는 일은 오페라 가수를 준비시키는 것. 이중창 삼중창 사중창을 연습할 때 그 자리에 없는 가수 몫을 대신해서 불러야 한다. 그는 이탈리아 성악가 움베르토 보르소의 반주를 3년간 도맡아 하면서 발성 및 호흡법을 배웠다.
오케스트라 반주의 대목마다 특성을 집어내 피아노 반주에 반영하는 것도 오페라 코치의 일이다. “가수가 피아노 리허설에서 오케스트라 리허설로 넘어갔을 때 그 차이를 최소한으로 느끼게 해야 합니다. 현 파트의 연주가 많은 부분이라도 관이 몇 차례 빵빵 울리는 대목이 더 인상적이라면 피아노 반주에 관 부분을 넣어 성악가가 익힐 수 있게 하는 거죠.”
그는 2003년 귀국해 2004∼2006년 민간 오페라단에서 오페라 코치로 일하다 프랑스 가곡과 독일 리트에 심취해 한동안 오페라와 거리를 두었다. 2009년 다시 오페라로 돌아와 국립오페라단 창작오페라 갈라, 예술의전당 기획 오페라 ‘투란도트’, 소극장 오페라 축제 ‘현명한 여인’, 대학오페라 페스티벌 ‘돈 조반니’ ‘사랑의 묘약’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이론만 배워서는 결코 오페라 코치가 될 수 없습니다. 현장 경험이 오페라 코치를 완성시키지요. 오페라 가수들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만족스러운 무대를 관객에게 선사했을 때, 그 황홀감이 오페라 코치를 숨쉬게 하는 힘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