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세재(命世才)’라며 위나라를 창업한 난세의 영웅 조조를 품평한 교현(橋玄)의 말이다. “천하는 장차 혼란에 빠질 것인데 세상을 구할 만한 재목이 아니면 이를 구제할 수 없을 것이오. 그리고 천하를 안정시키는 일은 아마도 그대에게 달려 있을 것인저(天下將亂,非命世之才不能濟也,能安之者,其在君乎)(‘무제기(武帝紀)’편).” 교현은 조정에서 삼공(三公)을 지낸 관료였는데, 그가 무명(無名)인 조조에게 이런 평가를 내린 것은 조조의 앞날에 큰 보탬이 되었다. 어린 시절 끝도 없이 놀면서 숙부를 거짓말쟁이로 놀려주기도 한 조조. 그는 누구인가?
조조는 성(姓)은 조(曹)이고 휘(諱:고인이 된 제왕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앞에 붙여 존경의 뜻을 표시하는 말)가 조(操)이며, 자(字)는 맹덕(孟德)이다. 한나라 때 상국(相國)을 지낸 조참(曹參)의 후예이고 조부 조등(曹騰) 역시 환관이었고 그의 아버지 조숭(曹嵩)도 환관이다. 어려서 눈치가 빠르고 권모술수와 임협방탕(任俠放蕩·사내다움을 뽐내며 멋대로 논다는 의미)의 기질이 강한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교현의 이 말은 사실로 입증되었다. 나이 스물에 낭(郞)이 되었고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기도위(騎都尉)에 임명되어 영천(潁川)의 황건적을 토벌했고, 이 일로 승진하여 제남국(濟南國)의 상(相·지방장관)이 되었다. 북방을 장악하고 있던 원소와의 관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능력 위주의 인재등용과 냉철한 국가 경영 지침을 견지하였기에 천하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임종하면서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는데 또 고대의 규정에 따라 장례를 치를 수는 없다. 매장이 끝나면 모두 상복을 벗으라. 병사를 통솔하며 수비지에 주둔하는 자가 부서를 떠나는 일은 허락하지 않는다. 담당 관리는 각자 자신의 직무를 다하라. 시신을 쌀 때는 평상복을 사용하고, 금은보화를 묘에 넣지 말라”(무제기)는 영을 내렸으니, 진수의 총평처럼 조조야말로 “비범한 인물이며 시대를 초월한 영웅”이 아니겠는가. 잠룡 3인방들 중에 과연 누가 명세지재의 그릇을 가지고 있는가.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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