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5일 맑음. 재즈의 아득함은 감기약처럼.
트랙 #29 Miles Davis ‘So What’(1959년)
2001년 가을이 오기 전까지 나는 재즈에 단 한 번도 빠져본 적이 없었다. 빠져들기는커녕 혐오했다. 어렸을 적, 재즈는 검은 정장을 입은 기성세대들이 얌전빼며 앉아 구두 끝을 까딱대며 감상하는 맥 빠진 음악처럼 느껴졌다. 무릇 젊은이라면 잔뜩 증폭된 전자기타 소리를 내세운 단순하지만 반항적인 악곡을 듣거나 연주함으로써 어른들이 우리 또는 서로를 지배하기 위해 구축해놓은 시스템에 가운뎃손가락을 날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흐물흐물 녹아내릴 듯 몽환적인 연주에 삶의 무상함 따위를 냉소적인 어조로 읊조리거나.
2001년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전의 작은 레코드점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 마니아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커다란 음악의 해변이었다.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 별로 내키지 않는 바다에라도 발을 담가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재즈 마니아인 친구 Y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존심을 힘겹게 접었다. “그거 있잖아. 네가 좋아하는 재즈…. 앨범 딱 하나만 추천해주라. 한번 들어나 보게.” “도저히 하나만 추천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Y를 다그쳐 “그렇다면, 마일스 데이비스의 ‘카인드 오브 블루’. 너한텐 졸릴 수도 있으니 알아서…”라는 답을 얻어냈다.
지난 주말, 경기 가평에서 열린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지난해엔 심한 독감으로 포기했는데 올해는 강행했다. 왠지 그곳의 가을 재즈 기운을 2년 이상 멀리하면 ‘감성적 독감’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컸다. 예년만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 코라 재즈 밴드, 지미 코브-래리 코리엘-조이 디프란체스코, 존 스코필드 트리오의 공연을 봤다.
14일 오후 무대에 오른 83세의 지미 코브는 별처럼 많은 재즈 명반 중에 북극성 같은 명작으로 꼽히는 ‘카인드 오브 블루’에 참여한 연주자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인물이다. 드럼 위에서 코브의 양손은 젊은이의 것처럼 요동치며 리듬 무더기를 쏟아냈다.
11년 전 처음 재생한 ‘카인드 오브 블루’는 내 선입견을 10t짜리 해머로 깨뜨렸다. 대개의 곡이 블루스의 화성 진행을 기반으로 해 이해하기 쉬웠고, 관악기가 뿜어내는 솔로와 앙상블, 자유분방한 리듬은 록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우주적인 음향의 바다를 눈앞에 펼쳐 놨다. 가끔 그 바닷가에 다시 가보고 싶다. 그곳은 가을에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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