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 꼽힌 에릭 홉스봄(사진)이 최근 타계했다. 홉스봄이 서술한 마르크시즘의 핵심은 무엇이며 그는 현실 사회주의를 어떻게 바라보았나. ID: mysoc*** 》
에릭 홉스봄(1917∼2012)은 1940년대 중반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역사가의 길을 걸었다. 그의 저작 ‘극단의 시대’는 20세기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서로 격찬을 받았다. 그는 1990년대 후반 80대의 나이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신의 활동을 하나씩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애를 20세기 역사와 연관해서 그린 자서전 ‘미완의 시대’를 출간하여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홉스봄의 마르크스주의 역사이론은 자신의 역사이론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저작 ‘역사론’에 잘 나타나 있다. 홉스봄은 자신을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물질적 생산력과 생산의 사회적 관계를 받아들일 때에만 역사의 일정한 방향과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회관계 단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역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에서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엄격한 경제결정론이나 역사단계론을 ‘속류 마르크스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는 구소련 시기 스탈린주의 역사학을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소련 정부도 홉스봄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고, 그의 저작들을 금서목록에 올렸다.
홉스봄은 스탈린주의 역사학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을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롭게 발전시키려 했다. 첫째, 그는 역사에서 이데올로기, 문화, 전통 등 상부구조의 다양하고 능동적인 역할을 인정함으로써 토대와 상부구조의 경제결정론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둘째, 그는 미시사와 거시사를 모두 고려하여 전체적인 역사서술을 하려고 했다. 셋째, 계급 결정 과정에서 계급의식이 중요하다는 점을 밝혀 기계론적 계급이론을 수정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넷째,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추구하여, 그동안 상대적으로 무시되었던 하층 영역에 위치한 노동자, 농민, 산적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새롭게 관심을 집중했다.
홉스봄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을 진정한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으로 여기지 않았다. 홉스봄과 구소련 사이의 불화는 오래된 것이었다. 독일 베를린에서 사회주의 학생동맹에 가입하면서 사회주의 경력을 시작했던 1932년에 이미 그는 당시의 소련을 비판했다. 그때 그는 동료와 논쟁하면서 소련이 거꾸로 가고 있기 때문에 소련에서 공산주의자가 실패하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 사태를 보면서 홉스봄은 소련과 소련에 의존하고 있는 영국 공산당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러나 홉스봄은 영국 공산당이 해체될 때까지 당적을 유지했다. 당적을 유지한 이유를 그는 1999년 이탈리아 언론인 안토니오 폴리토와의 대담에서 밝혔다. 영국 공산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공산주의라는 이념 자체에 대한 ‘믿음’과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홉스봄은 ‘현실 사회주의’를 진정한 사회주의의 실현으로 보지 않았고, 사회주의 이념 자체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은 채 진정한 사회주의 이념을 실현한 사회가 출현할 것을 기대하면서 남은 생을 지냈다고 할 수 있다.
강성호 순천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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