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드라마 ‘울랄라 부부’는 지상파에선 만나기 어려웠던 19금(禁) 대사와 액션으로 시청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울랄라 부부’는 이혼한 남녀가 차 사고로 영혼이 바뀌면서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알아간다는 내용. 동시간대 MBC 드라마 ‘마의’와 박빙으로 시청률 1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남편의 영혼이 빙의된 아내(김정은 분)가 ‘쩍벌녀’ 포즈를 취한다든지, 치마가 엉덩이까지 내려가는 것도 모른다든지 하는 ‘민망하게 웃기는’ 상황을 비롯해 야하거나 지저분한 유머와 직설 대사가 난무한다. 그렇다고 정교하게 구성된 것도 아니고 개그콘서트 등 유명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장면이 뒤섞인 ‘잡스러운’ 짜임새다. 구성과 복선이 잘 갖춰진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의 고정관념을 뒤집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저질이면서도 구멍 난 스타킹을 보는 듯한 헛헛한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울랄라 부부’는 한마디로 ‘B급 드라마’다.
하긴 ‘B급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지 않았나. 이 뮤직비디오 인기 배경에 바지를 벗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 노래하는 싸이,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노홍철의 엘리베이터 댄스 등 이른바 ‘B급 유머 성적 코드’가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개봉 열흘 만에 7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순항 중인 영화 ‘점쟁이들’도 미스터리와 코믹, 스릴러, 호러를 뒤섞어 놓은 ‘조잡한’ 구성이다.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를 설정해 유도하는 웃음이 아니라 ‘당황스러운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B급 영화다. ‘아메리카노’, ‘죽겠네’ 등 ‘야하고 찌질한(표준어는 ‘지질한’이다!)’ 노래로 인기를 모은 2인조 밴드 ‘십센치(10cm)’는 또 어떤가.
이들은 최근 발표한 2집에서 1집보다는 다소 순화됐지만 기존 가수들이 시도하지 못했던 야한 대사를 직설적으로 넣은 음악을 선보였다. ‘어제는 내가 정말 미안해 오늘은 내가 더 잘해 볼게’로 시작되는 ‘고추잠자리’는 남녀 간 잠자리에 대한 대화임을 짐작하게 하며, ‘너의 꽃’이란 노래에서는 ‘같이 누워서 너에게만 물을 줄게…조용히 지나다니던 내 손길에/간지러워 온몸을 떨고 있었지’라며 성애 장면을 직접적으로 노래한다. 심지어 노래 ‘오늘밤에’에 나오는 공간은 칙칙한 ‘만실여관방’이다. 이들의 노랫말에서 품위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십센치의 2집 곡 대부분은 주류 아이돌 가수가 새 앨범을 발표하자마자 뜨는 모양새 그대로, 곧바로 음원차트 상위권에 랭크됐다.
찌질한 주인공이 일상에서 겪는 황당한 상황들을 보여 주는 인터넷 웹툰 ‘마음의 소리’도 마찬가지다. 이 만화는 연재 600회가 훌쩍 넘는 롱런 행진 중이며 신작이 오르자마자 검색어 1위에 오른다. 거칠고 촌스러운 그림체라는 형식도 B급이라는 평이지만 서사도 없고 개연성도 없는 허를 찌르는 웃음이 전형적 B급 코드다. 부모님과 형이 남긴 메모지를 이어 붙이니 ‘기쁜 마음으로 변기 좀 뚫어라’라는 글이 돼 버리는 상황 같은 어이없는 유머가 인기 포인트다.
대중문화 주류로 떠오른 이런 ‘B급’들을 보고 있노라면 누가 21세기를 세련과 첨단의 시대라고 했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왜, 지금 B급일까?
“과도한 의미를 요구하거나 치열한 순위 경쟁에 매몰되는 사회에서 스스로 물러나 앉겠다는 냉소적인 포즈.”(평론가 강유정) “A급은 1등을 뜻한다. 그런데 B급이 뜬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사회에 대한 반감이 반영된 게 아닐까.”(김수영 로도스출판사 대표)
1등만 기억하는 세상, 정답만 요구하는 세상, 그래서 위선과 위악이 판치는 세상, B급이면 어때, 나도 이 세상에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이런 자연스러운 날것의 정서를 향한 갈망이 어느덧 문화 주류로 떠오른 B급 문화를 흐르는 바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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