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를 한번쯤 돌아볼 때… 사십대, 고전에 빠져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0일 03시 00분


이제 나를 한번쯤 돌아볼 때… 사십대, 고전에 빠져들다
치열하게 달려온 그들… 삶의 쉼표 찾아 새로운 도전
출판가 ‘마흔’ 제목 열풍… 올 들어서만 42종 쏟아져

젊은 시절 지녔던 삶의 치열함을 넘어서 주변을 보살펴야 하는 중년에 꼭 필요한 지혜는 무얼까. 마흔 살에 읽는 고전은 그래서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젊은 시절 지녔던 삶의 치열함을 넘어서 주변을 보살펴야 하는 중년에 꼭 필요한 지혜는 무얼까. 마흔 살에 읽는 고전은 그래서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흐름출판)이 첫 출발점이었다. 지난해 8월 출간된 ‘마흔에…’는 원래 인문학 서적으로 기획된 손자병법을 40대를 위한 자기계발서로 재구성한 책이었다. 큰 기대 없이 틈새시장을 노렸음에도 1주일 만에 초판이 다 나갔다. 현재까지 20만 부가 팔렸다.

이어 두 달 뒤 출간된 신정근 교수의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1세기북스)도 15만 권이나 팔렸다. 이 두 권이 베스트셀러에 오르자 ‘마흔 살’과 ‘고전’을 엮는 것이 출판계의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올해 교보문고에서 판매된 도서 중 제목에 ‘마흔’이 들어간 책은 모두 42종.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위즈덤하우스)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21세기북스) ‘마흔셋, 묵자를 만나다’(예문) ‘마흔에 다시 읽는 수학’(예인) ‘마흔 인문학을 만나라’(행성:B잎새) ‘마흔 살의 정리법’(이아소)…. 나이 마흔에 공부해야 할 것이 갑자기 많아졌다.

○ 마흔 살의 고전 읽기

“20대에 읽던 손자병법과 40대에 다시 읽는 손자병법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손자병법은 싸움의 전략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도 승부하는 법, 즉 ‘공존의 철학’을 이야기한다.”(‘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사십대라면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철학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묵자를 읽으며 버림으로써 넉넉해지고, 사랑함으로써 성취하는 인생론을 찾아야 한다.”(‘마흔셋, 묵자를 만나다’)

출판계는 지난해 하반기에 일기 시작한 ‘마흔 살 고전 읽기 붐’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2차 베이비부머’로 불리는 30대 후반∼40대 초중반은 가장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던 이 세대에 대해 출판계는 “직장 다닐 때도 고민이 있으면 책을 사 보는 콘텐츠의 세대”라고 부른다. 교보문고와 YES24에 따르면 40대 독자의 비율이 전체의 25% 이상을 차지해 책을 많이 사 보는 20대나 30대 독자의 수에 밀리지 않는다.

김성수 21세기북스 기획실장은 “이들은 10년 전부터 성공학, 재테크, 경제경영서를 많이 읽어 온 세대이지만, 경제위기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지속되면서 좀더 권위 있는 고전에서 본질적 해답을 찾으려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의 저자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말하는 인간관계의 원리를 이해하려면 마흔 살 이상의 나이가 필요하다”며 “40대 독자들은 진보적 색채가 강하지만 현실적 감각도 있어 올해 대선에서도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마흔 살의 즐거움

마흔 살을 타깃으로 한 책 중에는 고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김정운 교수의 ‘남자의 물건’처럼 중년 남자의 외로움과 위기를 다룬 에세이도 인기다. 이의수 남성사회문화연구소장의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절묘하게 패러디한 제목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 책은 치솟는 물가, 감당하기 어려운 자녀교육비, 각종 스트레스와 질병, 집이 있어도 가난한 하우스푸어로 바뀌어버린 내 집 마련의 꿈 등으로 울어버리고 싶은 40대 가장을 위로한다.

‘마흔에 읽는 동의보감’의 저자인 한의사 방성혜 씨는 “허준도 ‘동의보감’에서 마흔은 본격적으로 몸이 변화하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규정했다”며 “생(生)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노병사(老病死)는 내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마흔 살 이후에는 마음의 건강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한다.

독일의 40대 기자인 티투스 아르누가 쓴 ‘남자는 헛발질이 필요해’(뜨인돌)는 남자들이 왜 불혹의 나이에 기괴한 짓을 하기 시작하는지 그 이유를 유쾌하게 설명한다. 갑자기 보디빌딩을 시작하고, 두 층만 계단으로 올라가도 헉헉대는 주제에 8000m 봉우리 정복을 계획하고, 마라톤을 넘어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신청하고…. 저자의 해석은 이렇다. “남자들이 불혹의 나이에 기괴한 도전을 시작하는 것은, 아직은 고집불통의 늙다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어 중년에 찾아든 위기를 단시간에 겪어 내려는 나름의 몸부림이다.”


[채널A 영상] “변하지 않는 가치 찾는다” 출판가에 고전 열풍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마흔#고전#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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