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걸으면서 맛보는 손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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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7일 03시 00분


◎ 북유럽 생활스포츠 ‘노르딕 워킹’ 국내 상륙

노르딕 워킹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다. 한국노르딕워킹협회 회원들이 카트린 부르스터 세계노르딕워킹협회 수석 코치(쪽 사진 중 오른쪽)와 함께 20일 강원 홍천의 구룡령 옛길을 걷고 있다. 홍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노르딕 워킹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다. 한국노르딕워킹협회 회원들이 카트린 부르스터 세계노르딕워킹협회 수석 코치(쪽 사진 중 오른쪽)와 함께 20일 강원 홍천의 구룡령 옛길을 걷고 있다. 홍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그런데 평지는 언제 나와요?”

20일 오전 11시 강원 홍천군과 양양군을 잇는 구룡령 옛길로 들어선 뒤 5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뜬금없는 질문이 나왔다. 오르막을 함께 오르던 40여 명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맨 뒤에서 뒤따라오던 남성이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면서 내뱉은 말은 더 이상했다. “여러분, 조금만 참으세요. 곧 평지가 나올 겁니다.”

이들이 다른 등산객들과 달리 평지를 찾는 이유는 ‘손맛’을 느끼기 위해서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갯마루에서 손맛을 찾는다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이다. 이날 산에 오른 사람들은 노르딕 워킹(Nordic Walking·스틱을 이용한 걷기 운동) 동호인들. 산을 타는 재미보다는 스틱으로 땅을 짚으며 느끼는 리듬감과 손맛을 기대하며 길 위에 오른 사람들이다. 이날은 한국노르딕워킹협회에서 주최하고 등산스틱 제조 전문 업체인 레키 코리아가 후원한 ‘노르딕 워킹 지도강사 교육’의 마지막 날이었다.

○ 스틱으로 전해지는 땅의 울림

노르딕 워킹은 노르웨이 등 북유럽에서 발달한 노르딕 스키(언덕과 평지 지형 중심의 스키 종목)에서 출발했다. 선수의 운동인 노르딕 스키가 생활스포츠인 노르딕 워킹으로 옮겨간 것이다.

핀란드의 마르코 칸타네바는 여름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스키 폴을 든 채 지구력과 근력 훈련을 하는 크로스컨트리 선수들을 보며 연구를 거듭한 결과 노르딕 워킹을 개발했다. 그는 1997년 쓴 글에서 노르딕 워킹을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으로 소개했다. 이를 계기로 노르딕 워킹은 현재 핀란드에서 90여만 명, 2005년 독일에서만 200여만 명이 즐기는 대중 생활체육이 됐다.

노르딕 워킹은 집 근처에서도 간편하게 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일반 등산 스틱과 달리 손바닥에 밀착되는 끈이 달린 전용 스틱만 있으면 된다. 가격은 10만∼30만 원대. 박상신 한국노르딕워킹협회 회장은 “북한산 둘레길이나 양재천, 또는 집 근처에 있는 산책로에서도 누구나 가볍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손맛’이란 스틱으로 땅을 디뎠을 때 손에 전해지는 땅의 감촉과 진동을 말한다. 박 회장은 “1년 정도 노르딕 워킹을 하면 마치 네 발로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이 맛을 한번 알면 헤어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노르딕 워킹을 ‘좀 즐긴다’는 사람들은 분리해서 길이 조정이 가능한 2단, 3단 스틱 대신에 1단 카본 스틱을 애용한다. 땅의 울림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어서다.

○ 간편한 ‘캐주얼 운동’


“어? 되는 것 같은데요?”

밴드 ‘부활’의 전 보컬 김재희 씨(38)가 말했다. 그는 평소 산행을 즐기지만 노르딕 워킹과는 이날 처음 만났다. 하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그는 산에 오르기 전 인도에서 5분 정도 짧은 교육을 받았을 뿐이었다.

노르딕 워킹은 쉽다. 양손에 스틱을 들고 땅바닥을 찍으며 걸으면 된다. 국제 공인 강사 자격증을 가진 김병철 메드 아웃도어(레키 코리아의 국내 총판) 대표는 “전문 강사에게 기본 동작을 배우고 일주일 정도 혼자 연습을 하면 익숙해진다”고 말했다.

그 대신 자기에게 맞는 스틱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배꼽보다 5cm 위로 올라오지 않는 것이 적당하다. 스틱 길이가 맞지 않으면 팔 동작이 어색해진다. 스틱의 끝 부분이 금속 재질이라 아스팔트길에서는 “딱, 딱” 하는 소리가 나 민망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고무 덮개를 따로 사서 끝에 끼워주면 된다.

준비가 끝났다면 자연스럽게 걸어보자. 앞으로 내딛는 발의 반대쪽 팔(오른발을 내밀 때는 왼팔)을 앞으로 내밀면 된다. 초보자는 간혹 왼팔과 왼다리를 같이 내딛는 어색한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스틱은 땅바닥과의 각도가 55∼65도 정도 되게 비스듬히 쥐고 내딛는 발과 뒷발의 가운데를 찍으며 걷는다. 팔을 뒤로 내저을 때는 손목을 자연스럽게 뒤로 꺾어주면서 스틱을 놓았다가 팔을 앞으로 옮길 때 다시 가볍게 쥐어준다. 리듬감이 포인트다.

○ 걸을 때보다 칼로리 소모 두배

강덕호 순천향대 교수(스포츠의학)는 “(노르딕 워킹은) 일반 걷기보다 에너지 소비량이 늘지만 정작 운동을 하는 사람은 강도가 높아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거리를 걸었을 때 노르딕 워킹이 걷기보다 운동량이 많지만, 피로감은 덜하다는 뜻이다. 한국노르딕워킹협회에 따르면 1시간 동안 노르딕 워킹을 하면 400Cal(체중이 70kg인 성인 남성 기준)의 에너지를 쓴다. 걷기 운동(180Cal)의 두 배 이상이다. 이는 스틱을 의식적으로 더 움직인 결과다.

노르딕 워킹은 고령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강 교수는 “노르딕 워킹은 땅을 짚으며 걷기 때문에 운동효과와 안전이 모두 보장된다”고 했다. 독일에서는 노르딕 워킹의 효과를 인정해 일부 보험사에서 노르딕 워킹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에게 최대 20%의 의료보험 할인 혜택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노르딕 워킹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의외의 것에 있다. 바로 어색함이다. 길 위에서 스틱을 들고 휘적휘적 걸어가자면 조금 창피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날 행사에 함께한 노르딕 워킹 경력 10년의 카트린 부르스터 세계노르딕워킹협회 수석 코치에게 물었다.

“처음 노르딕 워킹을 했을 때 어색하지 않았나요?”

“예전에는 공원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멀리 있는 산을 가리키면서 ‘왜 맨땅에서 스키를 타느냐, 저기 있는 산으로 가라’며 비웃었죠. 하지만 요즘은 아침에 운동하는 사람 세 명 중 한 명은 노르딕 워킹을 즐깁니다. 사람이 늘어나니 자연스러워졌죠.”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홍천=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노르딕 워킹#북유럽 생활스포츠#캐주얼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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