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루소 연애소설 한편이 신분 경계를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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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7일 03시 00분


신엘로이즈 1, 2/장 자크 루소 지음·김중현 옮김
552쪽(1권) 512쪽(2권)·각 권 2만5000원·책세상

‘논리’란 세상을 단순화하는 방법이다. 명징한 대신 편협하다. 그래서 논쟁을 부른다. 논리는 불편한 토론을 즐겨야 그 편협함을 극복할 수 있다. 만일 어떤 논리에 권력이 더해지면 독재가 시작된다. 논쟁이 사라지고 끔찍한 현실이 만들어진다. 반면 ‘스토리’는 세상을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규정하려고 들면 애매할지 모르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런 스토리는 공감대를 타고 느슨한 연대를 만든다. 저자의 의도보다 더 많은 것이 담긴다. 인간이 가진 소통도구인 말과 글이 신비로운 상징체계이기 때문이다. 논리가 그 신비스러움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라면 스토리는 최대화하는 방식이다.

장 자크 루소가 이런 예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저술은 ‘사회계약론’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달랐다. 평민과 귀족의 사랑을 다룬 연애소설 ‘신엘로이즈’였다. 사실 ‘사회계약론’은 ‘논리적’인 지식인들에게 좀 인기가 있었을 뿐이다. 예를 들면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낸 로베스피에르가 어디에나 들고 다녔던 책이다. 그는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공포정치를 열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죽였고 결국 자신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논리의 숙명을 그에게서 보는 듯하다.

‘신엘로이즈’는 명실공히 그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1761년에 출간된 뒤 1800년까지 프랑스어판만 115쇄를 찍었다. 세상에 115쇄라니! 인쇄소에서 책을 찍는 속도가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 시간 단위로 돈을 받고 대여했을 정도다. 신분의 차이나 남자와 여자, 나이와도 상관없이 모두가 이 소설에 열광했다. 역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소설에는 신분 차이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신분 제도가 그 절절한 사랑을 가로막은 것이다. 이야기는 여주인공인 쥘리가 죽으면서 끝난다. 쥘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를 갈라놓은 미덕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맺어줄 거예요. 저는 그런 행복한 기대 속에서 죽어요. 당신을 죄 없이 영원히 사랑할 권리를, 그리고 한 번 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권리를 제 생명과 맞바꾸어 얻게 되어 너무 행복해요.”

당시 독자들은 이런 쥘리의 죽음에 슬픔이 아니라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독자들이 루소에게 편지를 썼다. 그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고통, 환각, 경련, 오열’을 체험했으며 감정이 격해져 미칠 것 같다고 했고, 눈물과 한숨 그리고 고통과 희열도 느꼈다고 했다.

독자들은 등장인물들과 매우 강렬하게 동일시됐고 귀족과 평민, 주인과 하인,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간의 경계까지도 넘어선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그들은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들까지 모두 자신과 비슷한 감정과 이성을 가진 평등한 존재로 보게 됐다. 프랑스 대혁명을 전공한 역사가인 린 헌트는 저서 ‘인권의 발명’에서 “이런 배움의 과정이 없었다면 평등이라는 낱말에 깊은 의미를 담지 못했을 것이며 또한 정치적인 성과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렇게 중요한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신엘로이즈’가 루소 전집의 한 권으로 다시 출간됐다. 그것도 ‘사회계약론’보다 먼저 나왔다. 책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강창래 작가·북칼럼니스트
#문학예술#루소#신엘로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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