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55)의 시는 한 장의 사진 같다. 사람의 얼굴을 ‘찍었다’면 눈, 코, 입을 훑는 데 그치지 않는다. 미간의 주름이나 귓불의 처짐, 약간 하늘로 솟은 콧구멍들을 찬찬히 집어낸다. 시간이 멎은 듯하고, 사유는 깊어져간다.
최근 나온 여섯 번째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문지)에서도 집요한 관찰벽(癖)은 여전하다. 이번에 앵글이 멈춘 곳은 타인의 죽음이다.
‘발버둥치는 몸무게가 넥타이로 그네를 탄다/다리를 차낸 허공이 빙빙 돈다//몸무게가 발버둥을 남김없이 삼키는 동안/막힌 숨을 구역질하는 입에서 긴 혀가 빠져나온다’(시 ‘넥타이’)
숨이 턱 막히는 듯, 불편하고 답답하다. 시 ‘목을 조르는 스타킹에게 애원함’은 성폭행의 순간을, 시 ‘할여으에어’는 그의 귀에 들린. 화상(火傷)을 입은 이가 살려달라는 말을 제목으로 옮겼다. 최근 만난 시인에게 죽음에 현미경을 들이댄 이유를 물었다.
“뭐가 즐겁다고 죽음을 상상하고 대입해보고 하겠어요. 하지만 타인의 죽음을 되뇌고, 그 순간 속으로 들어가면 내 안이한 습관이나 태도를 깨주는 것 같아요. 결국 그런 격렬한 긴장상태 속에서 고통스러운 시가 나오고, 강렬한 내적 희열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시인은 타인의 죽음을 파고들어가, 유사경험을 하고 그 속에서 시뻘건 시들을 건져 올렸다. ‘너무 생생하다’고 하자 시인은 “무서워서 제 시를 못 읽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웃었다.
김기택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들도 있다. 시 ‘우산을 잃어버리다’와 ‘풀’이 그렇다. ‘우산들은 어떻게 공기 속에서 비 냄새를 찾아내/첫 빗방울이 떨어지자마자 활짝 펴지는 것일까./눈물은 어떻게 슬픔이 지나가는 복잡한 길을 다 읽어두었다가/슬픔이 터지는 순간 정확하게 흘러내리는 것일까.’(시 ‘우산을 잃어버리다’)
‘관찰벽’이 행여 피곤하지는 않을까. “누구나 재미있는 얘기를 남에게 전할 때는 상세하게 전하게 되지 않나요. 제 시작(詩作)은 제가 흥미롭게 여긴 것을 자세히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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