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싱가포르 항공 명품 기내식 제조 현장 ‘창이공항’ 가보니

  • Array
  • 입력 2012년 11월 9일 03시 00분


피에르 발망이 디자인한 유니폼을 입은 여승무원이 기내모형에서 실습하는 모습. 싱가포르=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피에르 발망이 디자인한 유니폼을 입은 여승무원이 기내모형에서 실습하는 모습. 싱가포르=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1903년 라이트 형제로부터 시작된 109년 항공 역사. 항공 발달은 수송의 역사이자 여행의 역사며 동시에 기내 서비스 역사다. 놀라지 마시라. 최초 기내식이 등장하는 데는 인류 최초의 비행으로부터 1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비행선(독일). 날개 달린 항공기로는 그 5년 후(1919년) 영국과 네덜란드(KLM)에서 운항을 개시한 최초의 정기항공편이 처음이다. 기내식을 나눠줄 인력도 몇 년 후 탑승하지만 최초인 임피리얼항공(영국)에선 체중 40kg 이하의 열네 살 소년이었다. 비행 중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기내 갤리(Galley·취사장)는 1921년(KLM), 지금처럼 샴페인 와인 커피와 함께 다양한 기내식이 승무원(남자)에 의해 제공된 건 1927년(에어유니언), 따뜻한 음식은 그 이듬해(루프트한자)가 원년. 그해 팬암(미국)은 비로소 남승무원에게 유니폼을 입혔다. 스튜어디스(여승무원)는 1930년 아메리칸보잉에어(미국)가 최초인데 재밌게도 8명 모두 간호사다. 심한 기체 요동으로 인한 승객의 고통 해소가 목적이었다. 케이터링(기내식 조리) 회사로 최초는 세계 최대 규모 호텔 체인 매리엇(미국)의 모태가 된 식당 ‘핫쇼프(Hot Shoppe)’. 1937년 음식 상자에 담아 공항에 배달했다. 현재 기내식과 기내 서비스 분야에서 첨단을 달리는 곳은 싱가포르항공. 창이공항을 찾아 기내식과 서비스를 살펴보았다.

싱가포르항공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항공사다. ‘하늘의 호텔’이라 불리는 A380기 최초 운항(2007년 10월 싱가포르∼시드니), 보잉777기 최다 보유(2005년 58대)로 잘 알려졌다.

기내 서비스에서도 돋보인다. 여승무원 유니폼을 보자. 44년 전(1968년) 패션디자이너 피에르 발맹(프랑스)에게 의뢰해 만든 명품. 여전히 ‘싱가포르 걸’(여승무원 애칭)의 유니폼으로 동양인의 체취와 섬세함이 돋보이는 세련된 기내 서비스와 더불어 싱가포르항공의 상징이다.

창이공항의 싱가포르항공 케이터링센터에서 조리사가 기내식으로 제공할 탄두리 치킨과 새우를 탄두르(화로)에서 꺼내고 있다. 싱가포르항공 제공
창이공항의 싱가포르항공 케이터링센터에서 조리사가 기내식으로 제공할 탄두리 치킨과 새우를 탄두르(화로)에서 꺼내고 있다. 싱가포르항공 제공
기내식 분야도 첨단 일색이다. 창이공항의 SATS(싱가포르항공 자회사) 케이터링 센터가 그 현장이다. 1100명이 일하는 이곳 음식조리동(棟)의 11개 키친―찬 음식, 페이스트리, 동양식, 딤섬, 인도식, 일식, 이슬람식, 고급, 태국식, 양식 등―에선 매일 기내식 4만8000명분을 만든다. 공급받는 항공사는 창이국제공항 취항 40개사. 운항 편수로는 창이공항 전체의 80%다.

조리동엔 ‘SAK(Simulated Aircraft Kitchen·모의 기내주방)’라는 스튜디오가 있다. 고도 3만 피트(약 9km)의 기내와 똑같이 실내기압을 0.6∼0.7로 낮출 수 있는 감압장치가 설치된 곳이다. 여기선 어떻게 해야 지상과 환경이 다른 기내에서도 음식의 맛과 질이 유지될 수 있을지, 와인과 샴페인이 저기압 기내에서도 고유의 맛과 향을 유지하려면 과연 어떤 온도에 보관해 어떤 잔에 담아 서빙해야 할지 실험이 계속된다. 전 세계 항공업계에 단 하나뿐인 시설이란 게 싱가포르항공 기내식 담당 헤르만 프라이당크 부사장의 말이다.

퍼스트클래스에서는 잠옷은 지방시, 트래블 키트(여행용 세면도구세트)도 살바토레 페라가모 브랜드다. 음식은 지방시의 본차이나(도자기)에, 그랑크뤼(최고급) 와인과 샴페인은 크리스털 잔에 담긴다.
▼기내 가이세키 요리, 日료칸의 上品수준▼

싱가포르항공이 퍼스트 클래스 승객에게 제공하는 ‘교 가이세키’. 미슐랭 스타 셰프인 무라타 요시히로 씨의 요리로 다양한 음식들이 모두 도자기에 담겨 서빙된다. 싱가포르=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싱가포르항공이 퍼스트 클래스 승객에게 제공하는 ‘교 가이세키’. 미슐랭 스타 셰프인 무라타 요시히로 씨의 요리로 다양한 음식들이 모두 도자기에 담겨 서빙된다. 싱가포르=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부엌’이다. ‘아시아 퓨전’이란 독특한 음식 천국 싱가포르에 대한 또 다른 찬사다. 그런 음식 DNA가 싱가포르항공에 없을 리 없다. 기내식 차별화에 쏟아온 노력과 타 항공사에 없는 혁신 역시 그걸 증명한다. 백미는 ‘탑승 전 요리 주문(Book the Cook)’과 ‘국제음식자문단(ICP·International Culinary Panel)’이다.

자회사 SATS가 공급하는 기내식은 수량부터 엄청나다. 스위트(A380기 최고급 좌석)와 퍼스트 클래스에만 연간 11만5000개, 비즈니스 클래스는 180만 개나 된다. 탑승 전 요리 주문은 이 두 클래스에만 적용된다. 탑승 24시간 전(운항 4시간 이상 노선만) 고르는데 종류는 스위트와 퍼스트 클래스 60개, 비즈니스 40여 개. 인천발 항공편에도 서비스하고 있다. ICP는 영국 미국 스페인 홍콩 싱가포르 일본 인도 국적의 셰프 8명으로 구성됐다. 모두 국제적으로 이름난 요리사로 ‘탑승 전 주문’ 요리의 메뉴를 개발한 주인공이다. 싱가포르로 출발하기 전 시식할 요리로 가이세키(차례대로 서빙되는 일본의 정식)를 주문했다. 자문단의 무라타 요시히로 씨가 디자인한 것으로 그는 일본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3개(별 2개짜리 2개, 별 3개짜리 1개)나 운영 중인 ‘스타 셰프’다.

가이세키를 고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러 다양한 요리를 제각각 그릇에 담아내는 정교한 가이세키 요리가 기내에선 어떤 모습으로 서빙될 지, 케이터링 센터에서 조리된 맛은 또 어떨지 궁금해서다. 결론은 ‘아주 훌륭함’이었다. 일본 최고급 료칸과 료테이(料亭)에 뒤지지 않았다.

자문단 취재 중 반가운 얼굴을 봤다. 수년 전 싱가포르 세계미식가대회 취재 중 만난 싱가포르의 ‘아이콘 셰프’ 샘 렁 씨(센토사 리조트의 레스토랑 포리스트 수석요리사)이다. 그는 동서양의 식재료를 구별하지 않고, 전통 중국 요리에 바탕한 창의적 기법으로 싱가포르 퓨전 요리의 새장을 연 신세대 셰프. 그날은 자신의 시그니처 디시이자 주문 메뉴 중 하나인 ‘허브 가미 중국식 찜닭’을 선보였다.

샴페인과 와인은 구어메(미식)의 핵심. 그래서 비즈니스 이상 클래스에는 음식에 걸맞은 최고급이 제공된다. 그래서 선택에도 신중한데 싱가포르항공은 그 까다로운 ‘와인 페어링(Wine pairing·서로 조화를 이루는 음식과 와인 찾기)’을 세계 정상급 품평가 세 명으로 구성된 와인 자문단에 맡기고 있다. 스티븐 스푸리에(영국), 마이클 힐스미스(호주), 제니 조 리 씨(미국)가 그들, 그중 한국 태생의 홍일점 리 씨는 하버드대 졸업(석사) 후 홍콩에서 활동하는 아시아인 최초의 와인마스터이다.

이들은 그날 부르고뉴(프랑스 파리 북부)산 그랑크뤼급 피노누아(적포도주 품종) 중 연도 및 브랜드별로 10종을 놓고 와인 페어링 품평회를 열었다. 이렇게 선택된 와인을 유명 셰프가 디자인한 음식과 함께 기내에서 즐긴다는 건 정말로 기분 좋은 일이다. 물론 퍼스트나 비즈니스 클래스에서나 가능한 지극한 호사지만.


싱가포르=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