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공릉종합사회복지관이 운영하는 무지개교실에 16명의 초등학생이 모였다. 학년이 다른 남녀 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강사가 무슨 말을 할까 시선을 집중한다. 이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북한을 탈출한 북한이탈주민의 자녀들이다. 이들을 ‘탈북 아동’ ‘새터민 아동’이라는 말로 통칭하는 게 거슬렸지만 달리 부를 만한 용어도 없다. 그들 앞에는 캐논 콤팩트카메라가 하나씩 놓였다. 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사장 강동환)이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로 진행하는 세 번째 사진재능나눔 교육 현장이다.
사진 강의 전, 탈북을 경험한 아이들이라 차분한 수업이 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막상 강의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그 반대였다. 책상 위에 엎드린 학생도 있었고 옆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학생도 있었다. 강사가 분위기를 다잡으려 여러 방법을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교육을 보조하기 위해 있던 무지개교실 교사 세 명도 “앞을 보고 강사님의 말에 귀 기울이세요”라고 소리쳤지만 역시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딴청을 피워도 카메라를 쥔 손은 강사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유심히 보니 전체적으로 통일이 되지 않았을 뿐이지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사진을 배우고 있었다. 참석한 학생들이 저학년에서 고학년까지 학년 차가 있는 만큼 각자 지식을 습득하는 속도가 달라 착시가 생긴 것뿐이었다. 또 아이들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모니터에 나타난 영상을 보다보면 흥분되기 마련이라 교실 분위기가 산만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었다.
강사로 나선 캐논의 임슬기 씨는 이날 주제로 정한 ‘우리 동네 모습 찍기’의 핵심을 이렇게 설명했다.
①늘 보던 동네의 모습이라 새로울 것이 없다면 앵글을 하이 앵글이나 로 앵글로 바꾸자. 평소의 눈높이로 보던 동네와 다르게 보인다.
②콤팩트카메라의 특수효과인 어안렌즈 기능을 쓰면 더 재미있는 모습을 찍을 수 있다.
③가을 나무를 찍을 때도 카메라의 특수효과 중 ‘식물효과’ 기능을 사용하면 더 선명한 나뭇잎을 찍을 수 있다.
④동네의 모습이 지저분할 땐 찍고자 하는 건물만 선명하게 하고 나머지를 흐리게 하는 미니어처 효과를 사용해 본다.
사진교육이 끝난 뒤 무지개교실 담당자인 이정옥 사회복지사에게 아이들이 산만하고 불안정한 이유를 물었다. 몇 가지 원인을 들며 북한이탈주민들의 속사정을 알려준다.
“그들이 한국에 정착하려면 일을 해 부지런히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줄어 혼자서 지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북한에서는 아이들을 탁아소에 맡기면 대부분 탁아소가 알아서 키웁니다. 부모로서 기여하는 부분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부모 자신들도 탁아소에서 자란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자식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저 아이들이 잘못하면 지적하고 혼내기만 하죠. 결국 아이들은 애정결핍이 되고 산만해지면서 부모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탈북 아동들에 관한 얘기도 들려준다.
“탈북 아동들은 학교에서 대부분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스스로 말하지 않아요. 친구들과 깊게 사귀면 자신이 북한이탈주민이라는 것이 드러날까봐 깊게 사귀지도 못합니다. 밝혀도 특별히 불이익을 받는 것이 아니건만 삐딱하게 보는 일부 사람들을 의식한 탓입니다. 또 탈북 아동들은 어느 정도 자신을 숨기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탈북 과정에서 생긴 습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신의 문제점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무지개교실은 다릅니다. 이곳에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도 많고 그들이 맘껏 놀 수 있는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있습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억눌리고 표현하지 못한 스트레스를 이곳에서 맘껏 풀도록 합니다. 이들의 산만함을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니라 그 학생들이 자신의 해방구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고 좋게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담당교사의 얘기를 듣고 보니 우리 사회에 이런 북한이탈주민이나 다문화가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산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이 땅을 찾아와 새롭게 정착하려는 북한이탈주민들 눈에는 모든 것이 기득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들이 이 땅에서 열심히 배우고 남들보다 부지런히 일하는 까닭은 바로 그 기득권을 얻고자 함이다. 이제는 같은 국민이 된 그들이 쉽게 이 땅에 안착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좀 더 베풀고 나누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때다.
탈북 아동은? 국내에는 2만4193명(통일부 통계·9월 기준)의 북한이탈주민이 살고 있다. 북한이주민, 탈북자, 새터민 등으로 불리지만 통일부를 비롯하여 정부에서 사용하는 공식 명칭은 ‘북한이탈주민’이다. 부모와 함께 국내에 들어온 자식들도 사회 부적응 상태가 되기 쉽다. 특히 남북한 교육의 차이나 탈북 과정에 따른 학업 결손 등으로 학습 진도를 쫓아가지 못하는 등의 문제를 겪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일부나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탈북 아동 청소년 공부방과 대안학교 등에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최근 들어 탈북 청소년의 학교 부적응 등에 따른 학업 유예, 학업 중단 비율은 점차 줄어 드는 추세다. 현재 탈북 학생은 초등생 1020명, 중학생 288명, 고교생 373명 등 총 1867명에 이른다(2011년 교과부 통계). ▼5학년 철범이의 사진 프로젝트▼
철범(13)이는 한국에 온 지 4년째다. 부모와 함께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살며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다. 북한이탈주민인 어머니 이시란(가명·37) 씨는 식당에서, 아버지는 택시운전사로 맞벌이를 한다. 2003년 철범이가 세 살 무렵, 회령에 같이 살던 어머니가 탈북했다. 철범이는 외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회령은 북한의 국경도시라 탈북자 자식의 주민등록은 쉽지 않았다. 철범이는 유치원은 어찌 다녔지만 결국 초등학교는 다닐 수 없었다. 한국에 온 어머니가 중국 브로커를 통해 철범이를 외할머니, 이모와 함께 국경을 넘어 북한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쌀쌀한 늦가을 밤. 허리까지 차오르는 두만강 물이 차갑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폭이 채 100m도 안 되는 강을 건너는 세 사람에게 10분 남짓의 시간은 몇년 같았다. 철범이는 이모의 등에 업힌 채 강을 건넜다. 그렇지만 도강은 한국에 오기 위한 서막에 불과했다. 세 사람은 중국 지린, 쿤밍을 지나 태국 국경을 넘었고 거기서 다시 캄보디아로 가서야 긴 여정을 끝낼 수 있었다. 이들은 탈북 4개월 만인 2009년 3월 한국에서 철범이 어머니와 눈물의 상봉을 했다. 당시 아홉 살 어린 나이였던 철범이도 본의 아니게 가족과 함께 자신을 해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여러 나라 국경을 숨죽이며 넘는 인생역정을 경험했다.
한국에 오니까 어땠느냐는 질문에 “말이 통해서 살 것 같았다”는 대답부터 한다. 한국에 와서 자신의 나이에 맞는 초등학교 3학년 과정 대신에 한 학년 낮은 2학년을 선택했다. 그런데 학교에 가니 “북한 때문에 대한민국이 못산다”며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철범이는 자신이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중 한 녀석과 싸움이 붙었고 때려주었다. 그 뒤부터는 아무도 자신을 놀리지 않았다. 5학년인 지금은 학교 성적도 상위권이다. “수학은 우수한 편이지만 국어는 아직까지 미흡하다”는 게 어머니의 말이다.
철범이 어머니에게 카메라는 ‘놀이’를 연상시키는 모양이다. 집에 콤팩트카메라가 있지만 아이가 놀기만 할까봐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10월 28일 철범이가 찍은 사진을 보기 위해 기자가 철범이네 집을 방문했다. 캐논코리아에서 철범이에게 기증한 콤팩트카메라도 어머니가 사용하지 못하게 한 상태였다. 어머니에게 사진교육의 취지를 설명했다. 철범이가 ‘우리 동네 모습’이라는 주제에 맞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일주일 동안 카메라를 만져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철범이의 하루 일상은 생각보다 빡빡했다. 학교가 끝나면 북한이탈주민 아동들을 위한 학습장인 공릉종합사회복지관에 있는 무지개학교로 향한다. 주말을 빼곤 매일 다닌다. 가정형편상 일반 학원에는 다니지 못하는 까닭에 거기서 모자라는 분야를 공부하고 끝나면 태권도도 배운다. 복지관에서 저녁식사까지 해결한 뒤 오후 9시쯤 집에 돌아온다. 주말에도 부모님이 안 계시면 여섯 살배기 여동생을 돌봐야 한다. 밖에서 나쁜 사람 만날지 모른다며 부모님은 동생을 데리고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신다. 그나마 동생이 말을 잘 들어 다행이란다.
철범이는 주어진 사진과제를 찍을 시간조차 없어 보였다. 그래서 ‘우리 동네 모습’ 말고도 무지개교실에서 쉬는 시간에 친구들 모습을 찍어보겠단다. 말릴 이유가 없었다. 11월 3일 철범이가 그동안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배운 대로 찍었다는 느낌이다. 새로운 모습의 동네를 찍기 위해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동네 전체를 찍어 보기도 하고 아파트 밑에서 로 앵글로 위로 올려다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한꺼번에 많은 모습이 보여요. 어안기능을 사용해 밑에서 위로 사진을 찍으니 건물이 이상하게 찍혀 재미있어요”라며 좋아한다.
사진을 찍어본 소감을 묻자 “추억을 남길 수 있어 좋고 기억을 대신해줘서 좋아요”라고 대답한다. 사진을 찍을 때 힘든 점이 없었느냐고 묻자 “타이밍을 잡는 게 힘들어요”라며 전문가처럼 얘기한다.
철범이는 장래에 요리사나 경찰이 되는 게 꿈이다. 엄마가 집에서 요리하는 것을 보면 그냥 좋단다. 그렇지만 정작 엄마는 “남자가 무슨 요리냐”며 손사래를 치는 천생 북한 스타일이다. 아버지는 경찰이 되길 바란다. 철범이도 위험할 때 남을 도와주는 경찰도 좋단다.
아무튼 철범이가 이 땅에서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아 보였다. 이 많은 고비를 넘기고 철범이가 자신의 꿈을 이뤄 멋진 경찰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