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에세이집 ‘서울의 건축’ 낸 최준석 씨…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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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4일 03시 00분


저자 최준석 씨.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저자 최준석 씨.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건축이 미처 채우지 못한 상상의 여백들이죠.”

건축 에세이집 ‘서울의 건축, 좋아하세요?’(휴먼아트·사진)에 건축물의 양식이나 비례, 디테일에 관한 얘기는 거의 없다. 건축에 대한 사전 지식이 많아질수록 건축물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느끼기 어렵다는 게 건축사사무소 나우(NAAU)를 운영하는 저자 최준석 씨(41)의 생각이다.

그는 영화 미술 음악 문학 등 예술 장르를 가로지르며 누구에게나 익숙한 서울의 건축물 28개에서 ‘보이지 않는 것’ 보기를 시도했다. 그 결과 시끄러운 종로거리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종묘 정전에서는 ‘침묵이 주는 소리’를, 수백 년간 한곳을 지켜온 경복궁 근정전에선 모빌에서 느끼는 바람의 움직임을 포착해냈다.

책에는 건축가 김인철과 조성룡의 작품이 둘씩 등장한다.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에 있는 김인철의 ‘어반 하이브’(2008년)는 맞은편에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교보타워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어반 하이브는 3800개가 넘는 구멍을 벌집 모양으로 뚫어놓은 외벽 구조체가 특징이다. 건축가는 구조를 숨기는 교보타워와 반대로 구조를 과감하게 밖으로 드러내는 역발상으로 덩치가 몇 배나 큰 교보타워에 밀리지 않는 빌딩을 세울 수 있었다. 그가 설계한 서대문구 대신동 김옥길기념관(1999년)은 이화여대 총장과 문교부 장관을 지낸 교육자 김옥길을 내세우지 않고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음’으로써 기념관 주인공의 됨됨이를 두고두고 기억하게 만드는 명작이 됐다.

건축가 조성룡의 선유도공원(2002년)과 꿈마루(2011년)는 ‘봉인이 풀린 타임캡슐’처럼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영등포구 양화동 선유도공원은 정수장 시설물을 생태공원으로, 광진구 능동 꿈마루는 국내 최초의 골프장인 서울컨트리클럽의 클럽하우스였다가 어린이대공원 관리사무소가 된 곳을 공원으로 고쳐 지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들입니다. 과거의 아주 작은 흔적도 지우지 않으면서 필요한 만큼만 지어 퇴적된 시간을 느낄 수 있죠. 새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특별한 새것이 됐습니다.”

그는 2008년 불에 탔던 숭례문 복원 결정도 아쉬워했다. 숭례문이 불에 타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처음으로 숭례문의 실재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타고 남은 흔적을 유리로 씌워놓고, 밤에는 과거의 잔상을 홀로그램으로 투사해 숭례문을 추억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사라져버린 것은 사라짐 그 자체를 드러냈을 때 가장 강한 풍경이 된다”고 말했다.

주말마다 아내 및 두 딸과 건축물을 보러 다니는 저자는 “서울은 지루하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도시의 가치는 거대한 랜드마크나 화려한 건축에 있지 않습니다. 낡은 골목길 모퉁이 벽, 많은 사람의 손때가 묻은 공원 난간, 칠이 벗겨진 쇠창살처럼 상상과 환상을 자극하는 것들이 도시를 의미 있게 하지요.”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최준석#서울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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