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김치품앗이 나선 다문화가족 왁자지껄 우리풍경 버무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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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7일 03시 00분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다 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동네에서 흔히 듣던 말이다. 서로 네 것 내 것 없이 이웃하면서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고, 농사일이든, 집안일이든 품앗이를 통해 함께 나누며 살았다. 지금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돼 버린 이웃과 함께 북적이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책들이 있다.

마침 김장철이 다가온다. ‘북적북적 우리 집에 김장하러 오세요’(소중애 글·정문주 그림·푸른숲주니어)는 베트남에서 시집와서 아직 우리 문화가 낯선 슬기네와 우혁이네가 김장을 하는 이야기이다. 두 집안 아빠 엄마와 아이들이 배추를 다듬고 씻고, 양념을 만들어 김치를 서로의 입에 넣어 주는 왁자한 풍경을 그린 그림이 흥겹다.

김치를 함께 담그며 인종이 다르고, 사는 형편이 다른 두 집안은 자연스레 이웃 가족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배추가 맛깔스러운 김치가 되기까지의 정보는 덤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가마솥’(김규택 글 그림·느림보)은 동지 팥죽으로 마을이 하나가 돼 가는 모습을 신명나는 그림으로 보여 준다. 우리 선조들은 붉은 빛이 귀신을 쫓고 재앙을 막아 준다고 하여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이 생기면 팥떡이나 팥죽을 만들어 나누었다. 이 책에선 한 마을 사람들이 마음을 닫고 사사건건 싸우기만 하던 중 괴물이 나타나 위험에 빠지자, 똘이가 기지를 발휘해 동짓날까지 팥죽을 끓여 주겠다고 약속해 괴물이 잠시 물러나게 한다. 괴물을 물리쳐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가 생기자 마을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접고 하나가 되어 가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가마솥을 마련하고 팥죽을 끓이고 팥죽이 눌어붙지 않게 가마솥 안에 나룻배를 띄우고 여럿이 노를 저으면서 땀을 흘리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미움도, 분노도 스르르 녹아 버린 것이다. 수많은 인물들이 한꺼번에 등장하여 와글거리며 북적거리는 장면들 속에서도 인물들 하나하나의 표정과 몸짓이 살아 있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큰 가마솥 안에 나룻배를 띄우고 노를 젓는 매력적인 장면은 이 책의 명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사람과 어우러지는 재미를 살려주는 또 하나의 책으로 ‘장날’(이윤진 글·이서지 그림·한솔수북)을 꼽을 수 있다. 조선시대 장날의 풍경을 4m 병풍 책으로 표현한 이 그림책은 마치 시장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숱한 사람들로 가득한 시장을 거니는 듯 화면을 가득 채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사고팔고, 먹고 마시고, 만나고, 즐기는 시장 풍경 속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조월례 어린이도서평론가
#어린이 그림책#다문화가족#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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