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아파트의 변신 Season 2]<7>고시원을 캐스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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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7일 03시 00분


거실-층간 끌고 다니는 독방, 솔로들의 천국

혼자 살기에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사과 하나 수박 반쪽이 포장된 상품들, 택배를 대신 받아 주는 편의점, 건강과 적정 칼로리까지 고려한 식단으로 아침식사를 1인분씩 배달해 주는 식당, 담배 한 갑, 콜라 한 병도 사다 주는 소액 심부름 서비스….

이렇게 혼자 살기 편하게 해주는 서비스들은 늘어났지만 개인을 정서적으로, 공간적으로 배려해 주는 상품은 없다. 가족이 없거나 멀리 떨어져 있으면 외롭다. 몸이 아파도 돌봐줄 사람이 없어 두렵다. 저녁을 같이 먹을 사람을 찾다가 퇴근을 미루고, 주말을 혼자 보내기 싫어 집으로 선뜻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혼자 사는데 방 한 칸 구했다면 다행일지 모른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경제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주거 공간을 찾기란 무척 어려운 것이 우리 도시다. 보통의 주거 공간은 가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아파트이고, 그 외의 주거 공간은 모두 ‘비정상적인 상태’의 사람들에게 ‘임시로’ 주어지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취직하기 전, 결혼하기 전, 전세금을 마련하기 전 잠시 머무는 공간으로 고시원과 원룸이 지어졌다.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 아파트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혼자 살지만 함께 살고, 함께 살지만 혼자 사는 듯한’ 그런 아파트 말이다.

이동식 가구 같은 방

고시원은 극단적인 1인 주거 형태다. 공간의 경제적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개인에게 제공되는 것은 침대, 책상, 그리고 조그만 수납장이 전부다. 거실, 화장실, 주방은 공동으로 쓰는데 아주 작다. 필자의 고시원 생활을 돌이켜보면 이 콤팩트한 공용 공간에서도 사람들의 관계에 따라 공간의 분배가 이루어졌다(예를 들어 냉장고 속 선반, 공동 슬리퍼, 공동 세탁 및 당번제 등). 또 ‘공부방’이라는 목적과는 거리가 먼 기러기 아빠, 가출한 학생, 도시로 이주한 사회 초년생 등도 고시원을 찾는다.

필자가 여기서 소개하는 고시원 아파트는 1인 가구용으로 기존 아파트에 고시원의 기능을 접목한 것이다. 고시원처럼 사적인 공간은 가구별로 따로 두고 거실, 부엌, 화장실 등은 공유한다. 혼자 사는 사람의 생활 패턴을 고려해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하는 방(침대, 책상, 옷장)은 제외하고 사용 빈도가 낮은 나머지 부분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먼저 ‘혼자 사는’ 방은 조망권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하나의 가구 개념으로 접근했다. 각 방은 바퀴 달린 가구처럼 이동이 가능하다. 방을 움직일 수 있으면 방들의 배치를 달리해 가며 다양한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평소에는 각자 원하는 위치와 방향에 방을 두었다가 주말에 방을 한쪽에 정렬해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이벤트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부담스러운 사람은 방을 독립된 장소로 이동하여 자신만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할 수 있다.

층간 이동이 자유로운 방


방을 이동식 가구로 설계하면 다양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여름엔 선선한 북향이나 서향으로 방을 배치했다 겨울엔 남향으로 옮긴다.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층간 이동도 가능하다. 바깥출입이 쉽도록 저층에 살다가 탁 트인 전망이나 조용한 환경을 원한다면 고층으로 옮겨가면 된다. 어떤 방향에, 어떤 층에 방을 둘지 등에 대해서는 입주자들이 규칙을 만들면 된다. 공동체 프로그램에 의해 누구나 균질화된 조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거실은 가구 바깥의 복도와 엘리베이터에까지 확장해 공용 면적을 넓혔다. 주방의 경우 배수시설인 싱크대를 제외하고 테이블은 이동이 가능해 유연한 공간 이용이 가능하다. 화장실과 샤워실 수는 방의 개수와 입주자들의 요구에 따라 탄력적으로 결정한다.

다인(多人) 가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방들의 집합이었던 기존의 무거운 아파트와 달리 개인을 중심으로 가볍게 구성한 고시원 아파트는 분양과 매매도 쉬울 것이다. 개인에게 경제적 부담이 되는 전용면적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용빈도가 낮은 공용 공간을 개인의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하게 함으로써 변화무쌍한 라이프스타일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이 된다.

카풀 문화가 차를 줄이고 좌석의 활용률을 높인 것처럼, 고시원 아파트도 필요한 공간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경제적인 주거 형태다. 가족들이 함께 살던 집이라는 개념의 아파트는 개인들이 모여 사는 1인 가구공동체로 바뀔 것이다. 이러한 공용 공간에선 혼자 살면서도 함께 사는 삶이 가능하다. 취향 공동체로서, 때론 갈등도 있는 소셜 커뮤니티로서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본보에 소개된 아파트 설계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 필자 명단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②조남호 솔토건축소장 ③황두진 황두진건축소장 ④김광수 이화여대 건축학부 교수 ⑤정현아 DIA건축소장 ⑥김찬중 THE_SYSTEM LAB 소장 ⑦안기현 이민수 AnL스튜디오 공동소장 ⑧장윤규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운생동 건축 대표 ⑨임재용 OCA건축소장 ⑩양수인 삶것(lifethings)소장

안기현 이민수 AnL스튜디오 공동소장 ahn@anl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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