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없어 불길하다고 일제땐 찬밥신세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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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9일 03시 00분


천연기념물 540호 경주개 동경이 파란만장 ‘犬生’

제 이름은 수의(3·♂)입니다. 6일 천연기념물 540호로 지정된 ‘경주개 동경이(東京狗)’이니 귀한 몸이라고 할 수 있죠. 동경은 경주의 옛말이에요. 저는 경주 양동마을 언덕배기 집에 살아요. 낯선 이의 손을 핥을 정도로 사람을 좋아하죠. 올여름 마을에 놀러온 관광객은 “너처럼 항상 웃는(?) 개는 처음 봤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용감해야 할 때는 사나워진답니다. 2010년 집에 쳐들어온 멧돼지와 싸우다 온몸에 상처를 입은 적도 있어요.

▶본보 4월 5일자 A14면 참조… 경주개 ‘동경이’ 천연기념물 된다

쫑긋 솟은 귀, 생기 있는 눈, 날렵한 몸체, 쭉 뻗은 다리…. 제가 봐도 참 잘생겼어요. 그런데 꼬리가 엉덩이에 딱 붙어 있을 정도로 짧아요. 아예 꼬리가 없는 친구들도 있어요.

5∼6세기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 파편. 멧돼지를 사냥하는 동경이의 꼬리가 무척 짧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 제공
5∼6세기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 파편. 멧돼지를 사냥하는 동경이의 꼬리가 무척 짧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 제공
제 조상들은 1500여 년 전부터 경주에서 살았대요. 토종개죠. 5∼6세기에 만들어진 신라시대 고분에서도 꼬리 짧은 개를 형상화한 토우(土偶)가 발견됐어요. 책에도 나와요. ‘동경잡기’ ‘증보문헌비고’ 같은 문헌에는 “경주에 꼬리가 없거나 짧은 개가 널리 사육됐는데, 이를 ‘동경견’이라 불렀다”는 구절이 있답니다.

동경이의 인생, 아니 견생(犬生)은 파란만장했어요. 신라시대에는 왕족이나 귀족이 키우던 애완견이었다고 해요. 이후 1000년 이상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던 동경이에게 1930년대 큰 시련이 찾아왔어요. 일제가 ‘꼬리가 없어 불길한 짐승’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우리 동경이를 막 잡아들인 거죠. 그러고는 가죽을 벗겨 군대에 납품했어요. 아, 생각만 해도 털이 다 뽑힌 것처럼 아파요. 광복이 된 후에도 동경이의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어요. 동경이들은 ‘병신 개’ ‘복 없는 개’라는 놀림을 받았고 오랫동안 떠돌이 개 신세를 면치 못했죠.

2000년대 중반이 돼서야 동경이 삶에 빛이 비치기 시작했어요. 2005년 국립경주박물관이 개최한 ‘신라 토우전’에서 꼬리 짧은 모습을 본떠 만든 토우를 발견한 최석규 동국대 경주개동경이보존연구소 교수(55)가 처음으로 ‘동경이가 신라시대부터 이어진 토종개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이후 경주시의 지원을 받아 “꼬리 짧은 개를 가진 농가에 사료를 무상으로 지급하겠다”고 했어요. 여기저기서 “나도 그런 개 가지고 있다”고 나선 거죠. 이후 최 교수는 ‘한국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를 만들어 제 집안 어른들을 연구하고 혈통을 보존하기 시작했어요.

현재 저처럼 순수 혈통의 동경이 323마리가 경주에서 길러지고 있습니다. 구박덩어리에서 천연기념물로 신분이 상승한 우린 17일 개로선 처음으로 경주시 거리 행진을 했어요. 앞으로 매년 1억 원 정도의 사료비와 방역비를 국가가 지원한대요.

최 교수는 저를 보며 “옛 신라인이 저랬겠구나 싶다”고 했어요. 순박하고 착하지만 구박 속에서도 살아남은 그 끈질김, 그리고 명석하고 지혜로운 모습에서 신라인의 기질이 느껴진다고 해요. 개와 주인은 닮는다잖아요. 저를 보고 싶으면 경주로 오세요. 환하게 웃는 얼굴로 기다릴게요!

경주=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천연기념물 540호#경주개#동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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