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촘촘한 구성 정갈한 연출… 벅찬 춤사위마저 있었더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2일 03시 00분


정영두 안무 ‘프로메테우스의 불’ ★★★★

기술의 발전 속에서 인간의 변화상을 춤으로 표현한 ‘프로메테우스의 불’. LG아트센터 제공
기술의 발전 속에서 인간의 변화상을 춤으로 표현한 ‘프로메테우스의 불’. LG아트센터 제공
사상가나 비평가가 되어버린 이 시대의 ‘앞선’ 예술가들은 지적(知的)이기 위해 종종 감동을 포기하고 관념을 선택한다. 자신의 이야기보다 사회적 관심을 대변한다.

이처럼 개념예술이 대세인 이 시대를 공유하는 안무가이지만 정영두의 표현방법은 달랐다. 상징 대신 설명을, 은유 대신 몸짓의 풍유를 택했다. 실험을 외면하고 즉흥성을 배제한 채 여덟 개의 장면을 순차적으로 나열했다. 후쿠시마의 재앙을 직접 목격하는 등 오랜 시간에 걸친 사전연구의 결과물을 90분간 펼쳤다.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11월 17, 18일 LG아트센터)은 왜 인간에게 불을 전해 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프로메테우스의 변명에서 시작한다.

“다른 동물들과 싸울 수 있는 뿔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단단한 머리통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밤송이 하나만 떨어져도 머리통 감싸 쥐고 이리저리 날뛰는 꼴을 보세요.” 마치 어린아이를 세상에 내놓은 아버지처럼 태양의 모조품인 불(지혜)을 훔쳐서라도 인간의 손에 쥐여줄 수밖에 없었음을 말로 설명한다. 기계의 힘을 빌려 공기 중으로 퍼지는 컴퓨터 목소리는 불을 훔쳐 준 죄로 제우스가 내린 형벌(3000년 동안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는 고통)을 받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이 안 될 만큼 재미있고 우스꽝스럽다. 이러한 프롤로그는 뒤에 이어지는 장면마다 자연스레 오버랩 될 정도로 강한 메시지로 남았다.

관념을 뒤로한 채 몸짓의 풍유에 승부를 건 만큼 매 시퀀스는 솔로, 2인무, 군무로 이어졌다. 가이아, 안드로이드 등 캐릭터마다 확연히 다른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다. 완전히 다른 패턴의 의상, 영상 투사, 미니멀한 음악은 이를 도왔다. 육진(六塵) 장면에서는 무용수가 내뿜는 숨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공중에 퍼지며 실시간으로 리듬을 만들었다. 기술(테크놀로지)을 활용하지만, 기술에 가려 춤의 본질을 잃진 않았다. 특히 7명이 원을 그리며 도는 마지막 장면은 동작만으로 거대한 우주를 표현했다.

잘 짜인 구성, 정갈한 연출. 어느 한 장면도 소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무대가 감동으로 마무리되지 못한 것은 왜일까. 예술의 가장 큰 역할이 ‘당연한 것들’에 대한 저항이라고 정영두 스스로 정의하지 않았던가. 보는 이로 하여금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춤추는 기술은 그가 깨뜨리고, 넘어야 할 산처럼 보였다.

철저한 연구가 비로소 몸짓으로 무대에서 펼쳐질 때 안무가의 독창성은 완결된다. 커다란 책이 오브제로 등장하거나 복제를 설명하는 마임보다 좀 더 자유로운 춤동작에서 다채로움은 피어날 것이다. 춤동작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이어지는데도 간간이 지루함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에피메테우스(뒤에 생각하는 이)이기를 거부했다면 춤의 기술(스킬)을 먼저 생각하는 이가 되어주길 바란다.

장인주 무용평론가
#무용#프로메테우스#정영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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