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대상을 찍는 걸 좋아했어요. 대학 다닐 때 무용과가 생겨 프로그램 책자 사진을 찍은 게 시작이었죠. 잘 찍는다고 소문이 나면서 계속 일을 맡다 보니 이것만 하게 됐네요.”
서울 강북에서 잠수교로 진입하기 직전 오른쪽 주유소 건물의 지하실. 프리랜서 무용사진가 최영모 씨(56)의 작업실이다. 창고로 쓰던 330㎡(100평) 남짓한 이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그는 밤을 새워 작업해 연꽃처럼 화사한 이미지들을 뽑아낸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던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무용사진을 찍어왔으니 올해 딱 30년이 됐다.
무용사진을 찍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움직이는 피사체를 찍는 것도 어렵지만 어두운 조명에서 움직이는 피사체를 찍는 것은 더 힘들었다.
“디지털 시대가 오고 카메라 기술이 발전하면서 필름 카메라 시대보다는 무용사진 찍는 게 100배쯤 쉬워졌어요. 그래도 누구나 어느 정도 찍을 순 있지만 남들보다 더 잘 찍기는 어렵죠. 경험이 필요하니까요.”
30년 동안 경험을 쌓은 그는 그래서 디지털 시대에도 건재하다. 많은 무용인이 그의 무용사진을 최고로 꼽는다. 최 씨가 1년에 작업하는 무용작품은 평균 50∼60개. 작품당 리허설과 본공연을 합쳐 평균 4000∼5000장의 사진을 찍는다. 필름 카메라로 작업할 때는 720장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디지털로 작업하면서 크게 늘어났다. 가장 최근에는 국립발레단의 ‘창단 50주년 갈라쇼’와 창작발레 ‘왕자 호동’을 찍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 버리는 순간순간을 그는 어떤 전략으로 잡아낼까.
“여러 방법을 시도했어요. 직관적으로 찍어보기도 하고, 리허설을 보고 동선과 동작을 파악한 뒤 본공연 때 원하는 장면을 노리고 찍어보기도 했죠. 하지만 결론은 느낌 오는 대로 그냥 찍는 게 정답이에요. 오히려 (원하는 순간을) 기다리면 놓치는 경우가 더 많아요.”
무용사진의 아이러니는 따로 있다. 공연이 실제론 실망스러워도 사진은 멋있어 보일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점. 최 씨는 “그렇긴 해도 사진이 공연의 모습을 정직하게 반영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같은 공연이라도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사진 느낌이 다르다. 하체가 튼튼한 무용수들은 사진 속에서도 에너지가 넘친다. 대표적인 경우가 국립발레단 간판 발레리나 김지영이다. “하체가 좋으면 점프도 높고, 동작이 시원시원해요. 반면 하체가 약하면 동작들이 작습니다. 대신 상체 동작이나 표정연기로 약점을 보완하려 하죠.”
공연사진 작업과는 별개로 사진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작업도 한다. 1993년 전시회와 함께 사진집 ‘당스 뉘(DANSES NUES)’’를 낸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안은미, 홍승엽, 제임스 전 부부 등 지금 국내를 대표하는 무용가 11명의 누드사진으로 화제가 됐다.
“에너지가 넘치는 건강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만큼 황홀한 것은 없다”는 그는 19년 전 ‘당스 뉘’보다 더 강렬한 느낌의 작품들로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