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Life/인생의 맛]위스키 한 모금, 스코틀랜드 속으로 한 걸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3일 03시 00분


모린 로빈슨 디아지오 마스터 블렌더

모린 로빈슨 씨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제품마다 개성 있는 향과 맛이 있어서 스스로의 기호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술”이라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모린 로빈슨 씨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제품마다 개성 있는 향과 맛이 있어서 스스로의 기호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술”이라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마스터 블렌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내 직업이다. 커피업계에 바리스타, 와인업계에 소믈리에가 있듯이 위스키 업계에는 최상의 위스키를 만들어 내기 위한 위스키 배합비율과 맛을 결정하는 마스터 블렌더가 있다. 그게 내 직업이다. 명함에 마스터 블렌더라는 직함이 찍히기 전까지 나는 그저 평범한 연구원이었다. 대학에서 약학을 배운 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곳을 찾아 들어간 회사가 디아지오였다.》

디아지오에 입사한 뒤에도 7∼8년간 내가 한 일은 화학자들이 연구실에서 흔히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양한 위스키를 접했지만 그 위스키는 내게 그저 그래프용지에 성분비율로 표시되는 연구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삶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남다른 후각 덕분이었다. 위스키를 재료로 한 반복적인 실험에서 나는 위스키 특유의 맛과 향을 동료들보다 훨씬 잘 구분했다. 스스로에게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은 나는 틈날 때마다 위스키의 향과 맛을 음미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입사 8년차가 되던 해에 사내에서 마스터 블렌더를 뽑는다는 공고가 났고 난 과감하게 도전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마스터 블렌더가 된 일은 디아지오는 물론이고 지역이나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됐다. 위스키 산업이 근대화된 이후 공식기록에 남은 최초의 여성 마스터 블렌더였기 때문이다. 내가 디아지오에서 하는 모든 일은 ‘여성 최초’가 됐고 ‘여성의 도전’이 됐다.

현재 디아지오에는 여성 마스터 블렌더가 한 명 더 근무하고 있다. 우리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뛰어난 맛과 향에 대한 섬세한 표현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일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는 위스키 샘플의 풍미를 체크하는 것은 기본이고 위스키의 질적 차이를 감지하기 위해 온도나 담는 용기의 차이에 따른 섬세한 변화까지 잡아내려 애쓰고 있다.

맛과 냄새를 표현하는 언어도 세밀한 차이까지 구분해 기록하기 위해 끊임없이 가다듬고 있다. 예를 들어 풋풋한 위스키 냄새를 맡았을 때 대부분의 마스터 블렌더가 쓰는 ‘풋사과 냄새’라거나 ‘마른 풀 냄새’ 같은 표현 대신 ‘투명한 초록빛깔 향기(Glassy green)’라고 기록하는 식이다.

위스키는 다양한 맛과 향을 품고 있다. 한 모금 입에 머금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강렬한 스모키 향부터 이후 밀려오는 과일과 타닌, 초콜릿(또는 크림 같은 질감)의 맛과 향까지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풍부한 맛과 향을 선사한다.

한 곳의 양조장에서 만들어지는 위스키 원액으로 만드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저마다 개성 있는 맛과 향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위스키를 섞어서 만드는 블렌디드 위스키가 오페라라면 싱글몰트 위스키는 개성이 강한 솔로 바이올리니스트에 비유할 수 있다. 때로는 웅장한 오페라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솔로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처럼 싱글몰트 위스키는 독창적인 맛과 향으로 나를 매료시키곤 한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우리를 ‘아로마(향기)의 여행’으로 인도한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아로마와 그로부터 우러나는 이미지가 마음에 와 닿을 때 진정한 멋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만든 싱글몰트 위스키를 예로 든다면 라가불린(Lagavulin)의 스모키한 향을 맡으며 거칠고 도전적인 여행을 떠올리는 식이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마시면서 그 술이 만들어진 지역을 떠올려보는 일도 근사하다. 당신의 눈앞에는 어느새 스코틀랜드의 여러 지방과 섬이 펼쳐질 것이다.

더 멋진 여행을 원한다면 다양한 음주 방법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즐기는 가장 무난한 방법은 얼음을 넣어 천천히 녹여 마시는 온더록스다. 차가운 얼음은 위스키 안에 담긴 여러 단계의 맛과 향을 차근차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얼음 없이 스트레이트 잔에 따라 마시거나 진저에일이나 콜라 같은 소다음료와 섞어 마시는 것도 때로는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색다른 만족을 원한다면 싱글몰트 위스키 한정판에 도전해보자. 특정한 해에 한정된 양만을 생산하는 싱글몰트 위스키 한정판은 다시 경험하기 어려운 강렬한 맛과 향의 추억을 당신에게 선물할 것이다.

모린 로빈슨 ‘싱글톤’ 마스터 블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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