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WISDOM]수로… 기와… 돌다리… 400년전 明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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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4일 03시 00분


◎ 이장희의 스케치 여행
중국 ‘물의 도시’ 주자자오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는 하천은 사람들에게 휴식과 함께 역동적인 에너지를 주는 소중한 존재다. 청계천이 복원되자 서울의 중심부가 우리에게 얼마나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던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처럼 수로가 잘 발달된 ‘물의 도시’는 언제나 여행자들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중국에도 일찍부터 수로가 발달한 도시가 여럿 있다. 수향(水鄕)이라 불리는 이런 도시들은 수자원이 풍부한 양쯔 강 이남, 즉 중국 강남 지역의 지역적 상징이다. 상하이 주변에도 잘 보존된 수향이 많다. 이번에 찾은 주자자오(朱家角)는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곳이다.

주자자오 시가지는 송나라 때 조성되기 시작해 원나라 때 본격적인 모습을 갖췄다. 주(朱) 씨 가족들이 모여 살았던 주가촌(朱家村)이 지명의 유래다. 주자자오에선 수로와 운하를 바탕으로 상업이 번창했다. 지금의 모습은 명청 시대를 지나며 완성됐다.

여러 갈래로 뻗은 수로에는 36개의 오래된 돌다리가 있고, 주요 상가가 모여 있는 거리 9곳은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은 베이다제(北大街)다. 이 길은 이셴제(一街)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좁은 길(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갈 정도)이 한 가닥의 가는 선처럼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 골목은 아직도 명나라 시대의 건물이 즐비한 가운데 상가로 가득 차 활력이 넘쳤다.

하얀 벽, 촘촘한 기와가 깔린 검은 지붕의 집들과 널찍한 전돌이 깔린 비좁은 골목을 걸으며 나는 과거 명나라 때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한반도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즈음에 세워진 건물들이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니! 그저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길을 걷다 만난 돌다리 위에 올랐다. 빈틈 하나 없던 상가골목의 번잡함 속에서 벗어나 마주친 여유가 반가웠다. 오래된 도시의 숨결이 이런 것일까.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유난히 부드럽게 느껴졌다. 나는 닳고 닳은 구름문양의 돋을새김 난간을 쓰다듬으며, 400여 년 전 명나라 시대에 흐르던 구름 속을 지나 기분 좋은 마음으로 다리를 건넜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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