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민주주의가 히틀러를 낳았다… 자유의 역설로 가득찬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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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4일 03시 00분


◇생명을 읽는 코드, 패러독스/안드레아스 바그너 지음·김상우 옮김
408쪽·1만9000원·와이즈북

어머니 자궁 속에서 만들어진 태아의 손가락은 오리발처럼 생겼다. 세포층이 빽빽하게 밀집돼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태아의 손가락을 붙여놓았던 세포들이 ‘자살’을 한다. 자살 세포의 희생 덕택에 우리는 날렵한 손가락을 갖고 태어난다. 세포 자살은 유기체 형성의 필수 과정이다. 매일 100만 개 이상의 세포가 우리 몸속에서 자살한다. 1년간 죽는 세포의 무게를 합하면 그 개체의 몸무게와 맞먹는다. 세포들의 죽음이 곧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삶과 죽음의 역설(패러독스)인 셈이다.

죽음이 창조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는 패러독스는 수십억 년 전 생명이 처음 창조된 이래 계속돼 온 원리다.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지구는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미국 예일대 생물학 박사 출신인 저자는 자연과 세계를 바라보는 핵심 관점으로 ‘패러독스’를 제시한다.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창조와 파괴,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본성과 후천성, 물질과 정신, 부분과 전체, 우연과 필연 등의 역설적 긴장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 역설적 긴장이 생명과 자연을 창조하는 근본 원리라는 분석이다.

생명의 세계에서는 역설적 상황을 흔히 볼 수 있다. 암세포는 사람 몸의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이기적으로 분열해 나간다. 암세포의 탐욕은 자신의 숙주인 몸을 파괴함으로써 결국 자신까지 죽음에 이르도록 한다. 말레이시아에 서식하는 자살폭탄개미는 침입자로부터 자기 집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몸을 폭파시켜 아교 분비샘을 분출함으로써 침입자를 꼼짝 못하게 한다.

주로 과학적 현상을 통해 패러독스를 설명하면서 인간사에 퍼져 있는 역설까지 폭넓게 다뤘다. ‘민주주의의 역설’이 대표적 사례다. 민주정부에 대한 국민의 약속과 헌신이 실은 민주정부를 파괴하는 씨앗을 품고 있다. 민주주의적 투표를 통해 민주정부 자체를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재자 히틀러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였다는 사실도 역설적이다. 또 우리는 ‘자유의 역설’을 경험하며 산다.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는 사람, 회사, 정부 등에 대한 계약을 만들었지만 이 계약은 또 다른 구속이 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투쟁으로 형성된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알쏭달쏭한 역설적 명제를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역설을 바탕으로 한 자연과 인간사의 원리를 이미 꿰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책의 내용에 완전히 새로운 발견이나 무릎을 칠 만한 번뜩이는 통찰이 담긴 것은 아니다.

많은 과학적 현상을 간략하게 소개해놓아 상당한 과학적 소양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싱거운 독서 재료가 될 수도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저자 스스로도 후기에서 고백했다. 단지 패러독스라는 키워드를 통해 다양한 생명 활동을 야무지게 꿰어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가볍게 읽을 만한 과학 교양서로 손색이 없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패러독스#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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