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석기, 청동기, 철기, 그리고… 플라스틱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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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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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사회/수전 프라인켈 지음·김승진 옮김/440쪽·1만5000원·을유문화사

《휴대전화, 매트리스, 변기, 칫솔, 치약 튜브와 뚜껑, 빗, 반찬통, 냉장고 손잡이, 요거트 통, 컵, 로션 뚜껑, 비닐 랩, 강아지 사료통, 신용카드, 이어폰, 전등 스위치, 점퍼, 엘리베이터 버튼, 사원증 케이스, 컴퓨터, 마우스…. 아침에 눈을 떠 회사로 출근하기까지 손에 닿은 플라스틱을 모두 기록해봤다. 약 2시간 동안 줄잡아 20가지가 훌쩍 넘는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물건들도 있을 것이다. 기록해보기로 마음먹은 건 단지 오기에서였다. 책 서문에 저자가 밝힌 ‘플라스틱에 전혀 닿지 않은 채로 하루를 보내는 실험’ 실패담을 읽은 뒤였다. “그 실험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실험이었는가는 눈을 뜬 지 10초 만에 변기 의자가 플라스틱인 걸 보고 알았다. 접촉한 플라스틱을 모두 적어보았더니 45분 만에 노트 한 페이지가 다 찼고 하루가 끝날 무렵에는 네 페이지가 찼다.”(12쪽)》

플라스틱이 인간을 자연의 한계에서 해방하고, 부를 민주화하며, 예술에 영감을 주고, 우리 스스로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약속에서 인류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 놀라운 물질을 만들어낸 독창성에서 더 나아가 이를 해악 없이 활용하는 지혜를 찾아낼 때다. 을유문화사 제공
플라스틱이 인간을 자연의 한계에서 해방하고, 부를 민주화하며, 예술에 영감을 주고, 우리 스스로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약속에서 인류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 놀라운 물질을 만들어낸 독창성에서 더 나아가 이를 해악 없이 활용하는 지혜를 찾아낼 때다. 을유문화사 제공
1940년 세계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거의 0에 가까웠지만 70년간 꾸준히 증가해 2010년에는 2600억 kg이 됐다. 21세기 첫 10년간 만든 플라스틱의 양은 20세기 전체 기간에 만든 양과 비슷하다고 한다. 직접 손에 닿은 플라스틱을 적어 보니 백문불여일견이고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이었다. 플라스틱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이 책은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덟 가지 물건들을 통해 플라스틱의 역사와 문화, 경제, 과학, 정치를 살펴본다. 머리빗으로 플라스틱이 가져온 소비의 대중화를 분석하고, 라이터로 플라스틱이 낳은 ‘버리는 문화’를 고찰하며 비닐봉지를 통해 플라스틱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을 들여다본다.

플라스틱의 등장 시점은 논쟁적이다. 희소한 자연물질을 대체하기 위해 식물에서 추출한 준(準)합성 물질을 만들어낸 19세기 중반이 그때라고도 하고, 1907년 벨기에 출신 미국 이민자가 자연에서 발견되지 않는 분자들을 이용해 중합체(重合體)를 발명했다는 때를 기점으로 해야 한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플라스틱을 실험실에서 시장으로 끌어냈다는 데 대해서는 대체로 이의가 없다. 진주만 공격이 벌어진 1941년 미군이 모든 군수 물자를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려 하면서 본격 플라스틱 시대가 시작됐다.

가볍고 튼튼한 플라스틱은 신속히 현대인들의 삶을 파고들었다. 플라스틱에서 파생된 문제들도 시나브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를 옥죄어 들어왔다. 한 세기 전 미국 하와이 섬의 라이산 앨버트로스에게 가장 큰 위협은 깃털을 노린 사냥꾼이었지만 지금의 최대 위협은 플라스틱이다. 어미가 바다에서 삼킨 오징어와 날치알을 토해 새끼에게 먹이는 이 새는 매년 태어나는 50만 마리 중 20만 마리가 플라스틱 조각으로 위장이 꽉 차서 죽는다. 새의 배를 가르면 병뚜껑, 펜 뚜껑, 라이터는 예사이고 심지어 60여 년 전 9600km 떨어진 곳에서 격추된 해군 폭격기의 부산물도 발견된다.

여러 장에 걸쳐 지적하는, 플라스틱이 야기하는 문제들은 이미 새롭지 않다. 플라스틱 장난감의 유해물질 검출, 플라스틱제 병원 장비들의 호르몬 교란 등은 이미 숱하게 다뤄져온 주제들이다. 전 세계 장난감의 80%가 제조된다는 중국의 주강 삼각주와 광둥 성 공장 노동자들의 작업 여건, 비닐봉지를 대체한 종이봉지도 실상 쓰레기나 다름없어 환경 보호에 무익하다는 내용도 놀랍지 않다. ‘그래서 플라스틱을 쓰자는 것인가, 말자는 것인가’라며 책장을 넘긴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결론을 요약하자면 ‘불멸의 플라스틱, 제대로 알고 써서 줄이자’ 정도가 될 것이다.

책 말미에 소개된 플라스틱 소비 추적 실험도 의미는 있지만 자못 미련해 보인다. 반납 가능한 유리병에 담아 파는 유기농 우유가 플라스틱 뚜껑으로 덮여 있다는 이유로 사지 않은 인물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나는 우유 안 마셔도 된다”고 말하는 부분은 시쳇말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장면으로 다가온다. 의미 있는 실험을 통해 얻은 “물질을 거부할 필요는 없지만 물건의 소유를 통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물질과 관계를 맺는가도 고려해 봐야 한다”는 교훈은 진부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쉽지만 유에서 무로 돌아가기란 어렵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탄생한 산물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인류가 끝까지 플라스틱 숲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답은 저자도 기자도 모른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플라스틱#사회#자연물질#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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