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뜻을 찾아 사랑을 찾아 팔도를 흐르는 두 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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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4일 03시 00분


◇여울물 소리/황석영 지음/496쪽·1만5000원·자음과모음

그가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까까머리 경복고 재학 시절인 1962년 11월 ‘사상계’ 신인문학상으로 문단에 발을 디딘 그는 이제 칠순 나이 반백의 소설가가 됐다.

이 작품은 소설가 황석영이 작가 활동 반세기를 돌아보며 쓴 책이다. 자서전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19세기 전국 각지를 떠돌며 천지도(동학)에 심취했던 이신통이라는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그러나 작가는 20세기 말미 방북과 해외체류, 투옥으로 이어진 자신의 삶을, 또 다른 이상향을 꿈꿨던 19세기 이신통에게 투영시켰다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스스로 소설을 통해 반추한 작가의 일생은 소박하고 겸손해 보인다. 이신통에게서 그 어느 영웅적인 모습이나 결단적 지사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대신 하천의 경사 지역에서 빠르게 흐르는, 여울물 소리라는 제목처럼 작가는 ‘순리’를 말한다. 작은 물줄기가 모여 강을 이루고, 오랜 세월에 걸쳐 하천의 지형을 바꾸는 것처럼 수많은 민중이 역사를 바꿀 수 있음을 잔잔히 노래한다. 작가 자신도 결국 작은 물줄기 중 하나였다는 인식이다.

잔잔한 물줄기처럼 소설은 큰 기복 없이 수평적으로 흐른다. 시골 양반과 기생인 첩 사이에서 태어난 서얼 박연옥은 주막에서 만난 손님 이신통과 하룻밤 정분을 쌓는다. 이신통 역시 서얼이지만 세상을 개벽할 꿈을 품은 천지도(동학)인이다. 그는 집을 떠나 전기수(소설을 낭독하는 사람) 등으로 활동하며 전국을 돌며 세를 규합해 큰 뜻을 도모한다.

임오군란, 동학혁명으로 이어진 19세기 말 혼란기를 민초들의 모습을 통해 복원했다. 소설의 큰 줄기가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만큼 작품의 재미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복원한 당시 시대상을 엿보는 데서 찾아야 한다. 왁자지껄한 주막과 저잣거리를 중심으로 중인과 양인의 생생한 삶을 드러낸다. 당시 과거시험에 양반 대신 자리를 잡아주거나 시험지를 제출해주는 ‘도우미’들의 활약상을 그린 부분은 무척 흥미롭고, 놀이패들이 모여 한판 판을 벌이는 장면에선 절로 흥이 난다.

질퍽한 말의 향연은 또 어떤가. ‘주모, 나 왔소’라고 손님이 부르자 주모는 ‘속사포 랩’을 펼친다. ‘아이구, 젖 강아지 뒤축 문다구 어린 것이 주모가 뭐냐? 고모, 이모, 숙모 다 빼놓구. 그러구 성이 나씨여? 턱없이 나라구 들이대니, 뭣 모르는 사람은 재작년 그러께 바람나서 집나갔던 서방인 줄 알겠다. 이눔아.’

이신통과 박연옥 외에도 임오군란의 희생자 김만복, 이신통과 함께 놀이패에서 생활했던 백화를 비롯한 인물들의 삶을 조명한다. 사라진 이신통을 박연옥이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새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그 서사 패턴이 반복돼 갈수록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 별다른 갈등 구조가 없는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호기심을 유발하는 점은 ‘박연옥이 이신통을 과연 만날 수 있을까’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500쪽 가까운 긴 장편의 긴장감을 유지하기에는 힘겨워 보인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여울물 소리#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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