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시아 대륙이 각각 촉수를 뻗어 서로 맞대고 있는 듯한 지점 그 중간에 너비 550∼3000m, 길이 30km의 보스포루스 해협이 있다. 해협 서쪽 육지가 이스탄불이다. 한때 이 도시는 ‘성모 마리아가 지켜주는 도시’로 불린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었다. 비잔틴 제국이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한 뒤 콘스탄티노플은 이슬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로 바뀌었다.
책은 타임머신을 타고 이 세계사의 물줄기가 바뀐 시점인 콘스탄티노플의 철옹성 테오도시우스 성으로 들어가 현장을 눈앞에서 펼치듯 생생하게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테오도시우스 2세가 447년에 골드혼 해협과 마라마라 해로 둘러싸인 육지에 삼중의 성벽을 쌓아 건설한 요새는 이후 1000년 동안 단 한 번도 함락을 허락하지 않은 난공불락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피 튀기는 54일간의 전투 끝에 이날 성을 내줬고 역사가 바뀌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2장부터. 1장에서 기술한 전지적 작가 시점을 버리고 사투를 벌인 두 제국 지도자의 시점으로 전투가 시작된 첫날인 4월 2일로 돌아가 다시 훑는 방식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최고지도자) 메흐메드 2세가 비잔틴 제국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최측근 프란체스로부터 황제가 전투 기간에 기록한 일기장을 입수한 뒤 이 일기에 답하는 형식의 비망록을 덧붙였다는 설정이다. 날짜별로 교차하는 두 사람의 글을 통해 두 황제의 리더십이 또렷이 드러난다.
뒤에서 밝히지만 않았다면 실제로 일기와 비망록이 있다고 믿을 만큼 사실적이다. 국회의장까지 지낸 전직 정치인이었다가 저술가로 제2의 삶을 시작한 저자는 사실에 근접하기 위해 네 차례 현지를 방문하고 한 차례 체류했다고 밝혔다. 수백 권의 책과 자료를 읽었고 수십 명의 전문가와 관련 학자를 만났다고 한다. 부록으로 첨부된 ‘지도로 보는 최후의 공성전’을 비롯해 각종 연표들은 저자의 취재가 얼마나 방대하고 치밀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쉬운 부분은 마지막 3장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2012년 5월 29일로 시점을 바꿔 현지 체류 경험을 기록했는데 수필체의 문체 때문에 앞서 느낀 감동이 반감됐다. 흐름을 살려 최대한 객관적으로 현재의 이스탄불을 기술하고, 개인적인 느낌이나 감상은 에필로그 부분에 따로 모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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